웹툰 원작 공식 흔들…드라마가 새 IP 출발점으로 부상

웹툰 원작 공식 흔들…드라마가 새 IP 출발점으로 부상

원작의 시대를 거꾸로 돌린 드라마 시장

2026년 상반기 한국 드라마 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 가운데 하나는, 더 이상 웹툰이나 웹소설이 일방적으로 영상화의 출발점이 아니라는 점이다. 25일 나온 방송계 보도를 종합하면 올해 주목받은 드라마와 시리즈 가운데는 기존 인기 IP를 먼저 확보한 뒤 제작에 들어간 작품보다, 신인 작가의 창작 극본에서 출발해 주목도를 키운 사례가 뚜렷하게 늘고 있다. 한동안 흥행의 안전판처럼 여겨졌던 ‘웹툰 원작 공식’이 흔들리고, 반대로 드라마가 먼저 시장성을 입증한 뒤 웹툰·웹소설로 확장되는 역방향 구조가 본격화하는 흐름이다.

이 변화는 단순히 포맷의 이동이 아니다. 한국 콘텐츠 산업이 원작을 찾는 단계에서 원작을 만들어내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다. 이미 제작비가 커지고 편성 경쟁이 치열해진 시장에서, 익숙한 IP를 선점하는 전략은 리스크를 줄이는 장치로 기능해왔다. 그러나 올해 상반기에는 창작 극본 자체가 새로운 IP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이 다시 확인되고 있다. 이는 드라마가 더 이상 2차 활용의 종착지가 아니라, 다른 장르로 분기되는 ‘1차 생산지’가 될 수 있음을 뜻한다.

실제 사례도 분명하다. 아이유와 변우석이 주연을 맡아 국내외에서 기대작으로 꼽힌 MBC 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은 2022년 MBC 드라마 극본 공모전 당선자인 유지원 작가의 데뷔작에서 출발했다. KBS ‘은애하는 도적님아’ 역시 2020년 스튜디오드래곤 드라마 극본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넷플릭스 상반기 공개작인 ‘레이디 두아’, ‘월간남친’도 모두 신인 작가들의 순수 창작 극본으로 출발했다는 점에서, 이번 흐름은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구조적 조짐으로 읽힌다.

왜 다시 창작 극본인가

그동안 웹툰과 웹소설 원작이 강세를 보여온 이유는 분명했다. 이미 독자 반응이 검증돼 있고, 세계관과 캐릭터가 갖춰져 있으며, 팬덤의 초반 유입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작사와 플랫폼 입장에서는 대형 자금이 투입되는 프로젝트일수록 실패 확률을 낮추는 논리가 중요했고, 원작 IP는 그런 논리를 가장 손쉽게 충족하는 장치였다. 특히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경쟁이 본격화한 뒤에는 ‘설명 가능한 기획’이 더 큰 힘을 가졌다.

하지만 검증된 원작이 늘 흥행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인기 웹툰을 영상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서사의 호흡이 달라지고, 회차 구조가 재편되며, 캐릭터 해석이 바뀌는 순간 원작 팬덤의 기대와 대중의 시청 습관 사이에 간극이 발생했다. 무엇보다 시장 전체가 비슷한 장르와 설정의 IP에 몰리면서, 익숙함이 오히려 차별성을 약화시키는 부작용도 커졌다. 제작비는 높아졌지만, 이야기의 신선도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지점이 생긴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창작 극본의 경쟁력은 역설적으로 선명해졌다. 공모전 출신 신인 작가들의 작품은 아직 대중에게 닳지 않은 문법과 감정을 들고 들어온다.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원작 팬서비스’보다, 첫 회부터 세계를 설계해야 하는 서사의 밀도가 중요해진다. 올해 상반기 주목작 다수가 신인 작가의 창작물이라는 사실은, 드라마 시장이 안전한 정답만 좇기보다 새로운 문장을 찾기 시작했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공모전의 재발견, 신인 작가 시스템의 부상

이번 흐름에서 특히 주목할 대목은 ‘누가 새로운 원작을 만드는가’에 대한 답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21세기 대군부인’이 2022년 MBC 드라마 극본 공모전 당선작에서 출발했고, ‘은애하는 도적님아’ 역시 스튜디오드래곤 공모전 수상작을 토대로 제작됐다는 사실은 우연처럼 보이지 않는다. 과거 공모전은 등단의 상징에 가까웠다면, 지금은 산업의 실질적 소싱 창구로 다시 평가받는 모습이다.

이 변화는 제작 생태계에도 적잖은 함의를 남긴다. 스타 작가 중심 구조는 브랜드 파워가 분명하지만, 편중이 심해질수록 공급망이 얇아진다. 반면 공모전 기반 발굴 시스템은 잠재적 창작 인력을 넓히고, 제작사가 장기적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수 있게 한다. 무엇보다 신인 작가 작품이 성공적으로 영상화되고 다시 웹툰·웹소설로 확장된다면, 공모전은 단순 선발 절차가 아니라 IP 파이프라인의 첫 관문으로 격상된다.

이런 점에서 올해 상반기 사례들은 ‘신인 작가의 약진’이라는 미담을 넘어선다. 산업적으로 보면 이것은 제작사가 위험을 감수한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방식의 위험 관리일 수 있다. 이미 소진된 원작 시장에서 비슷한 소재를 비싼 값에 사오는 것보다, 신선한 창작 극본을 조기에 확보해 직접 키우는 편이 장기 수익 구조에 유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지금의 변화는 감성의 승리가 아니라 공급 전략의 전환에 더 가깝다.

드라마가 원작이 되는 순간, 수익 구조도 달라진다

드라마에서 웹툰·웹소설로 향하는 역방향 확장은 외형상 단순한 ‘재가공’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사업 측면에서는 훨씬 복합적인 의미를 가진다. 기존에는 웹툰과 웹소설이 영상화되면서 판권료, 제작, 해외 유통으로 이어지는 수익 경로가 일반적이었다면, 이제는 드라마가 시청자의 반응과 화제성을 먼저 확보한 뒤 다시 텍스트·그림 서사로 재편집되며 새로운 소비층을 붙잡는 방식이 가능해진다. 한 번 제작한 이야기가 다른 매체에서 다시 생명력을 얻는 것이다.

특히 OTT 시대에는 ‘보고 끝나는 콘텐츠’보다 ‘머무르게 하는 콘텐츠’의 가치가 커졌다. 드라마가 끝난 뒤에도 웹소설과 웹툰으로 세계관을 확장하면, 시청 경험은 독서 경험과 팬덤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플랫폼은 이용자 체류 시간을 늘리고, 제작사는 후속 판권과 부가사업 기회를 넓힐 수 있다. 결국 역방향 확장은 하나의 작품이 여러 유통 채널을 통과하며 수명을 연장하는 전략으로 작동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순서의 변화다. 원작이 먼저 있었기에 영상화가 가능한 시대에서, 영상이 먼저 성공했기 때문에 원작처럼 다시 소비되는 시대로 가고 있다. 이는 드라마가 단순한 최종 결과물이 아니라 ‘IP 실험실’이 된다는 뜻이다. 시청률이나 화제성, 글로벌 반응이 검증 도구가 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웹툰·웹소설이 후속 개발된다면 콘텐츠 산업의 중심축은 출판형 원작에서 제작 현장으로 조금씩 이동하게 된다.

플랫폼이 얻는 것, 시청자가 바뀌는 방식

플랫폼 입장에서 역방향 확장의 매력은 분명하다. 드라마는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대중적 반응을 집약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포맷이다. 어느 캐릭터가 소비되는지, 어떤 장면이 화제를 만드는지, 어떤 설정이 2차 창작을 부르는지 데이터가 빠르게 축적된다. 이 데이터는 훗날 웹툰·웹소설화 과정에서 서사 구조를 조정하는 근거가 된다. 처음부터 텍스트로 출발할 때보다, 이미 대중 반응을 확인한 뒤 재구성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시청자 경험도 달라진다. 과거에는 원작 팬이 드라마를 보러 오는 흐름이 강했다면, 이제는 드라마 시청자가 뒤늦게 웹툰과 웹소설로 이동하는 경로가 만들어진다. 즉, 원작 소비가 입문 경로가 아니라 심화 경로가 되는 셈이다. 이는 팬덤 형성 방식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캐릭터와 배우를 통해 먼저 세계에 진입한 이용자들이, 이후 텍스트와 그림 버전으로 이야기를 다시 복기하는 소비 패턴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 패턴은 특히 젊은 이용자층이 콘텐츠를 ‘한 번에 완결된 작품’이 아니라 ‘여러 플랫폼을 오가는 경험’으로 받아들이는 흐름과 맞물린다. 드라마가 화제의 중심이 되고, 웹소설이 서사의 세부를 보완하며, 웹툰이 이미지의 고정값을 제공하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하나의 히트작은 더 이상 단일 장르의 성공이 아니라, 서로 다른 플랫폼이 동시에 확대되는 연결 자산이 된다. 역방향 확장은 결과적으로 시청자의 이동 경로를 재설계하는 전략이기도 하다.

창작의 자율성과 산업의 계산이 만나는 지점

물론 이 흐름을 무조건 낭만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창작 극본의 부상은 신선한 이야기의 귀환이라는 점에서 반갑지만, 역방향 확장이 또 다른 ‘공식’으로 굳어질 경우 비슷한 문제가 반복될 수도 있다. 드라마가 먼저 흥행해야 다른 포맷으로 확장할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해지면, 초기 기획 단계에서부터 지나치게 범용적인 세계관이나 프랜차이즈화 가능성만 염두에 둔 서사가 늘어날 위험도 있다. 창작의 자유가 산업의 계산에 다시 포섭될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현시점에서 더 중요한 사실은, 시장이 최소한 새로운 출발점을 다시 시험하고 있다는 데 있다. 오랫동안 한국 드라마 업계는 “좋은 원작을 먼저 찾는 일”을 중요한 경쟁력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올해 상반기 사례들은 좋은 드라마가 곧 새로운 원작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작가 발굴, 편성 전략, 플랫폼 협업, 후속 사업 구조를 모두 다시 짜게 만드는 변화다.

결국 지금의 역방향 확장은 웹툰과 웹소설의 후퇴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 콘텐츠 산업이 한쪽 포맷에 의존하지 않고, 이야기의 출발점 자체를 다변화하고 있다는 의미에 더 가깝다. 드라마가 웹툰을 원작으로 삼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드라마가 또 다른 원작으로 재탄생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25일 보도된 상반기 사례들은 그 전환의 징후를 또렷하게 보여줬고, 관련 흐름은 국내 연예 보도 아카이브에서 이어서 확인할 수 있다.

출처

‘웹툰 흥행 공식’의 반전…드라마→웹툰·웹소설로 역방향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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