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시 48년 만에 최악 가뭄, 제한급수로 18만 주민 불편…기후변화 대응체계 전면 점검 필요

2025년 9월, 강릉시가 48년 만에 최악의 가뭄을 겪으며 18만 주민이 제한급수 사태에 직면했다. 김홍규 강릉시장이 생활용수 공급 50% 감축을 발표하고 9월 20일부터 시 전역에 특단의 제한급수 조치를 시행한 것이다. 이는 기후변화로 인한 강수 패턴 변화가 가져온 극단적 현상으로, 전국적 차원의 물 부족 대응체계 점검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오봉저수지 저수율 21.8%, 1977년 이후 최저 기록

강릉시 생활용수 공급의 핵심인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이 9월 19일 기준 21.8%까지 떨어지며 10%대 진입을 앞두고 있다. 이는 1977년 저수지 건설 이후 48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더 이상의 하락은 생활용수 공급 자체가 불가능한 위험 상황이다. 김홍규 시장은 “현재 추세로는 10월 중순까지도 가뭄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시민들에게 최대한의 협조를 당부했다.

제한급수는 시 전역 가정용 계량기의 50%를 잠그는 방식으로 시행되고 있다.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16시간 동안 급수를 중단하고, 야간 8시간만 급수하는 극한 조치다. 이로 인해 강릉시 전체 인구 21만 명 중 약 18만 명이 직접적인 불편을 겪게 됐다. 특히 고층 아파트와 상업시설에서는 물 부족으로 인한 운영상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강릉시는 긴급 대책으로 시내 곳곳에 임시 급수대를 설치하고, 물 부족 지역에 급수차량을 투입하고 있다. 또한 지하수 개발과 인근 지역으로부터의 용수 공급 방안도 검토 중이다. 시 관계자는 “단기적으로는 급수차 운영과 절약 캠페인을 통해 위기를 넘기고, 장기적으로는 대체 수원 확보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기후변화로 인한 강수 패턴 변화가 주원인

전문가들은 이번 강릉 가뭄의 근본 원인을 기후변화로 인한 강수 패턴의 급격한 변화로 분석하고 있다. 2025년 북태평양 기단의 이른 확장으로 제주도는 6월 하순에, 남부지방은 7월 1일에 장마가 조기 종료되면서 전국적으로 여름철 강수량이 크게 부족했다. 특히 강릉 지역은 티베트 고기압의 영향으로 열돔 현상이 지속되면서 9월까지 극심한 건조 상태가 이어졌다.

기상청에 따르면 강릉의 7-9월 누적 강수량은 평년 대비 40% 수준에 불과했다. 과거 여름철에 집중되던 강수가 가을로 지연되면서 주요 저수지의 수위 회복이 늦어지는 패턴이 최근 몇 년간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지구온난화로 인한 구조적 변화로 해석된다.

김연희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한반도의 강수 패턴이 아열대화되면서 여름철 집중호우와 가을 가뭄이 동시에 나타나는 극단적 현상이 일상화되고 있다”며 “특히 동해안 지역은 태백산맥의 영향으로 서쪽에서 오는 수증기 공급이 제한되어 가뭄에 더욱 취약하다”고 설명했다. 이는 기후변화가 지역별로 차별적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국 차원 물 부족 대응체계 전면 재검토 필요

이번 강릉 사태는 개별 지역의 문제를 넘어서 전국적인 물 부족 대응체계의 한계를 노출했다. 환경부는 2025년 가뭄 종합대책을 마련했지만, 실제 극한 상황에서의 대응력은 여전히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지역별 격차와 기후변화 속도에 비해 인프라 구축과 제도 개선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기상청은 2025년 정책목표를 ‘기상재해에 안전한 국민, 기후위기에 준비된 국가’로 설정하고 이상기상 대응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3개월 기온 전망과 영향정보 제공, 읍·면·동 단위 기상가뭄지수 도입, 소하천 유역 면적 강수량 정보 확대 등의 정책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예측과 실제 대응 사이의 격차를 줄이는 것이 핵심 과제다.

전문가들은 물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지역별 맞춤형 수자원 확보 방안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반영한 용수 공급계획 수립 ▲지역 간 용수 공급 네트워크 구축 ▲스마트 물 관리 시스템 도입 등을 제안하고 있다. 특히 단기적 위기 대응보다는 중장기적 관점에서의 종합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정세균 환경부 장관은 “이번 강릉 가뭄 사태를 계기로 전국 물 공급 체계를 전면 재검토하고,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물 관리 패러다임을 구축하겠다”며 “특히 취약지역에 대한 선제적 대응체계를 강화하고 지역 간 용수 공급 연계망도 확충하겠다”고 밝혔다.

기후변화가 가속화되면서 강릉과 같은 극한 가뭄이 전국 어디서나 발생할 수 있는 ‘뉴 노멀’이 되고 있다. IPCC 보고서에 따르면 RCP8.5 시나리오 하에서 이번 세기 말까지 현재 건조 지역의 가뭄 빈도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제는 가뭄을 일회성 재해가 아닌 상시적 위험으로 인식하고, 이에 대비한 선제적이고 종합적인 대응전략 수립이 시급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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