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가요 프로그램 50년을 지킨 이름
연합뉴스에 따르면 TBC와 KBS, 관악FM에서 약 50년간 라디오 가요 프로그램을 연출해온 김기욱 관악FM 본부장이 9일 오전 1시23분께 서울 은평성모병원에서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전했다.
향년 78세인 고인은 1948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경복고와 경희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뒤, 1970년대 중반부터 TBC 라디오에서 가요 프로그램 제작의 길을 걸었다. 10일 현재 방송계와 대중음악계가 그를 기억하는 이유는 단순히 긴 경력 때문만이 아니다. 한국 대중음악이 라디오를 통해 대중과 만나던 시대의 현장 한가운데에 그가 있었기 때문이다.
김기욱 본부장의 이력은 한국 방송사의 중요한 전환점과 맞닿아 있다. 1980년 방송 통폐합 이후 그는 TBC의 후신인 KBS 2라디오와 2FM에서 활동했고, 이후 지역 밀착형 라디오 방송국인 관악FM에서도 편성책임자와 라디오본부장 등을 맡았다. 중앙 방송에서 지역 미디어까지 이어진 그의 행보는 한국 라디오가 스타와 청취자, 도시와 동네를 연결해온 방식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가요계 대부’라 불린 라디오 PD
고인을 두고 후배 KBS PD였던 윤석훈 관악FM 센터장은 “라디오 전성시대에 줄곧 가요·연예·오락프로그램을 연출했고, ‘가요계 대부’ 같은 PD였다”고 말했다. 이 표현은 김기욱 본부장이 단순히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진행 순서를 조율한 제작자가 아니라, 음악과 연예 콘텐츠가 청취자에게 도달하는 방식을 설계한 인물로 받아들여졌음을 보여준다.
그가 KBS에서 연출한 프로그램에는 ‘오성식의 굿모닝팝스’와 ‘이본의 볼륨을 높여요’가 포함된다. 두 프로그램명은 각각 영어 학습과 대중음악, 청춘 문화와 라디오 감성을 떠올리게 한다. 고인은 라디오가 정보 전달 매체이면서 동시에 생활 리듬을 만드는 친밀한 동반자였던 시기에, 음악과 말의 균형을 다루는 제작자로 활동했다.
라디오 PD의 영향력은 화면에 직접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노래를 어느 시간대에 소개할지, 어떤 진행자의 목소리를 어떤 분위기와 결합할지, 청취자가 일상 속에서 방송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할지 결정하는 과정에서 제작자의 판단은 프로그램의 색을 좌우한다. 김기욱 본부장의 이름이 동료와 후배들의 기억 속에 뚜렷하게 남은 것은 이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쌓은 신뢰 때문으로 분석된다.
조용필과의 오랜 교분이 말해주는 시대
고인은 특히 1950년생 가수 조용필과의 오랜 교분으로도 잘 알려졌다. 조용필은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세대를 넘어 사랑받아온 가수로, 국내 독자에게는 익숙한 이름이지만 해외 독자에게는 한국 대중가요의 흐름을 상징하는 인물로 설명할 수 있다. 김기욱 본부장이 조용필과 가까웠다는 사실은 그가 활동한 라디오 현장이 당대 음악인들과 얼마나 긴밀히 연결돼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홍성규 작가가 2024년 조용필의 청춘 시절을 집중 조명한 평전 ‘청춘 조용필’을 냈을 때, 김기욱 본부장은 추천사를 썼다. 홍 작가는 두 사람이 “참 친했다”며 조용필과 가장 가까운 PD였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윤석훈 센터장 역시 같은 취지의 말을 했다. 이는 고인이 방송 제작자로서만이 아니라 음악인들과 신뢰를 나눈 동시대의 증언자였다는 의미로 읽힌다.
한국 대중음악의 성장 과정에서 라디오는 음반과 공연, 팬덤을 이어주는 핵심 통로였다. 텔레비전과 온라인 플랫폼이 음악 소비를 주도하기 전, 라디오에서의 선곡과 소개는 신곡의 첫인상을 만들고 가수의 이미지를 확장했다. 김기욱 본부장의 경력은 이런 시대적 구조 안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그는 스타를 앞세운 인물이 아니었지만, 스타와 청취자가 만나는 접점을 꾸준히 만들어온 제작자였다.
KBS 이후 관악FM에서 이어간 현장성
김기욱 본부장은 KBS 퇴직 후에도 방송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2009년부터 최근까지 17년간 관악FM에서 편성책임자와 라디오본부장 등을 지냈고, ‘생방송 가요톡톡’과 ‘추억의 음악다방’ 등 가요 프로그램을 직접 연출했다. 관악FM은 서울 관악 지역을 기반으로 한 지역 밀착형 라디오 방송국으로, 중앙 방송과는 다른 방식으로 청취자와 만나는 매체다.
그가 지역 라디오에서 계속 가요 프로그램을 만든 점은 주목할 만하다. 방송 산업이 대형 플랫폼과 영상 중심으로 이동하는 동안에도, 그는 특정 지역의 청취자와 실시간으로 호흡하는 라디오의 가치를 놓지 않았다. 이는 단순한 은퇴 후 활동이라기보다, 라디오라는 매체의 본질을 끝까지 실천한 행보로 평가된다.
안병천 관악FM 대표는 고인이 5월1일 노동절이나 공휴일에도 “다른 사람들이 쉴수록 우리는 방송을 해야지”라며 연출을 쉬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발언은 고인이 방송을 직업 이상의 공적 약속으로 받아들였음을 보여준다. 휴일에도 누군가에게 음악과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감각, 바로 그 감각이 지역 라디오의 존재 이유와 맞닿아 있다.
마지막까지 프로그램을 지킨 제작자
고인은 지난 6일 ‘생방송 가요톡톡’과 ‘추억의 음악다방’을 3시간 동안 연출한 뒤, 8일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 불귀의 객이 됐다고 안병천 대표가 전했다. 이 대목은 그의 삶을 설명하는 가장 압축적인 장면처럼 다가온다. 마지막까지 자신이 오래 지켜온 형식의 방송을 만들고, 청취자에게 익숙한 음악 프로그램을 내보낸 뒤 생을 마감한 것이다.
방송 제작자의 죽음은 때로 대중에게 배우나 가수의 부고보다 조용히 전해진다. 그러나 프로그램 뒤편의 제작자가 사라질 때 함께 사라지는 것은 한 사람의 직함만이 아니다. 특정한 선곡 감각, 출연자를 대하는 태도, 청취자와의 거리를 조율하는 방식, 후배들에게 전해지는 현장의 기준도 함께 기억의 영역으로 이동한다.
김기욱 본부장의 경우 그 기억은 중앙 방송의 황금기와 지역 라디오의 현재를 모두 포함한다. TBC와 KBS에서 쌓은 경험, 조용필을 비롯한 음악인들과의 교류, 관악FM에서의 책임감 있는 제작 태도가 하나의 궤적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그의 부고는 한 방송인의 별세를 넘어, 한국 라디오 가요 프로그램이 어떤 사람들의 손으로 만들어져 왔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글로벌 K컬처 시대에 다시 읽는 라디오의 역할
오늘의 K팝과 한국 드라마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글로벌 음원 플랫폼,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빠르게 세계로 퍼진다. 그러나 그 이전 세대의 한국 대중문화는 라디오 스튜디오와 제작진, 청취자의 사연과 선곡표를 통해 성장했다. 김기욱 본부장의 50년 경력은 글로벌 K컬처의 뿌리가 화려한 무대만이 아니라 꾸준한 방송 제작의 축적 위에 놓여 있음을 상기시킨다.
해외 독자에게 이 소식이 흥미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금 세계가 소비하는 한국 엔터테인먼트는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현상이 아니다. 대중가요를 소개하고, 가수를 기억하게 만들고, 청취자의 일상 속에 음악을 배치해온 라디오 제작자들의 시간이 있었다. 고인의 삶은 한국 대중문화가 어떻게 매체를 바꾸며 성장해왔는지 보여주는 한 사례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춘희씨와 1남1녀 김태리·김준석씨, 며느리 고두완씨 등이 있다. 빈소는 은평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고, 발인은 11일 오전 9시, 장지는 남한강공원묘원이다. 10일 현재 방송계가 그를 추모하는 분위기 속에서, 김기욱 본부장의 이름은 라디오를 통해 한국 대중음악의 시간을 이어온 제작자의 상징으로 남게 됐다.
세계 독자가 오늘 이 한국 소식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핵심은 분명하다. K컬처의 힘은 무대 위 스타뿐 아니라, 반세기 동안 음악과 청취자를 연결해온 보이지 않는 제작자들의 헌신에서도 자라났다는 점이다.
출처
· "조용필과 제일 친했던 PD" 김기욱 관악FM 본부장 별세 (연합뉴스)
· 트와이스 사나, 스크린 데뷔…日 사토 다케루와 로맨스 호흡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