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에 다시 서울, 한국을 향한 애정이 만든 첫 장면
연합뉴스에 따르면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4일 서울 강남구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영화 ‘상자 속의 양’ 언론시사회와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한국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직접 밝혔다. 신작을 들고 1년 만에 한국을 찾은 그는, 이번 방문 자체가 한국 관객과의 거리를 다시 좁히는 하나의 사건처럼 읽힌다.
이 만남이 주목되는 이유는 단지 해외 거장의 내한 일정이어서만은 아니다. 고레에다 감독은 이미 한국 배우 송강호, 강동원, 아이유와 영화 ‘브로커’를 함께 만든 경험이 있는 인물이다. 한국 영화 관객에게 그는 외국 감독이면서도 낯설지 않은 이름이고, 그 친숙함은 이번 내한을 단순 홍보 행보 이상으로 보이게 한다.
실제로 그는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에서 영화도 한 편 만들었고, 아는 스태프와 동료가 많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촬영하느라 자주 오지 못했지만 특별한 애정이 있다고 덧붙인 이 발언은, 한국 관객이 그의 작품을 바라보는 감정선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 감독 개인의 호감 표명이자, 오랜 협업 경험에서 나온 실제 체감이기 때문이다.
신작 ‘상자 속의 양’, 가족의 빈자리를 묻는 이야기
이번에 공개된 ‘상자 속의 양’은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이야기는 죽은 아들 카케루를 닮은 휴머노이드, 즉 인간의 외모를 지닌 로봇이 한 건축가 부부의 가족 안으로 들어오면서 벌어지는 일을 따라간다. 설정만 보면 공상과학 장르로 읽히기 쉽지만, 중심에는 결국 가족의 상실과 감정의 회복이라는 매우 인간적인 질문이 놓여 있다.
작품의 핵심은 기술 그 자체보다 기술이 건드리는 감정의 경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세상을 떠난 아들을 닮은 존재와 다시 가족이 된다는 전제는 위로와 불안, 애도와 집착, 그리움과 대체 가능성이라는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호출한다. 그래서 이 작품은 근미래라는 배경을 갖고 있지만, 관객이 붙잡게 되는 것은 오히려 지금 여기의 슬픔과 사랑일 가능성이 크다.
고레에다 감독이 그려온 세계를 떠올리면 이러한 설정은 더 흥미롭다. 그는 늘 가족이라는 가장 익숙한 공동체 안에서 관계의 미세한 떨림을 포착해 온 연출자로 평가받아 왔다. 이번 작품 역시 휴머노이드라는 장치를 내세우면서도,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남는 공백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으로 되돌아가는 영화로 읽힌다.
배우들의 조합이 만드는 기대, 낯선 설정을 감정으로 번역하다
영화에서 오토네 역은 일본의 대표 배우 아야세 하루카가 맡았다. 켄스케 역은 일본의 개그 콤비 ‘치도리’ 멤버 다이고가 연기한다. 그리고 죽은 아들을 닮은 휴머노이드 역은 쿠와키 리무가 소화한다. 이 조합은 작품의 정서를 한쪽으로 단순히 밀어붙이기보다, 상실과 생활감, 낯섦과 친밀감을 함께 조절하는 데 의미 있는 균형을 만들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부부의 관계를 연기하는 아야세 하루카와 다이고의 배치는 눈길을 끈다. 한쪽에는 섬세하고 대중적인 존재감이 강한 배우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코미디 감각으로 익숙한 얼굴이 있다. 이런 조합은 비극을 무겁게만 쌓아 올리기보다, 일상적 공기 속에서 감정을 천천히 드러내는 방식에 어울린다. 고레에다 감독이 자주 택해 온 생활 밀착형 연출과도 잘 맞는 선택으로 해석된다.
쿠와키 리무가 맡은 휴머노이드 역할 역시 중요하다. 인간의 외모를 지닌 로봇이라는 존재는 지나치게 기계적이어도, 지나치게 인간적이어도 이야기의 긴장이 무너질 수 있다. 그래서 이 배역은 영화 전체의 온도를 결정하는 축에 가깝다. 감독이 한국을 찾아 배우 쿠와키 리무와 함께 내한한 점은, 이 인물이 작품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다시 한번 짐작하게 만든다.
‘브로커’ 이후 이어지는 연결, 한국 관객이 더 가까이 읽는 이유
고레에다 감독이 한국에서 특별한 관심을 받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브로커’의 기억이다. 그는 송강호, 강동원, 아이유와 함께 한국 배우들을 중심에 둔 작품을 만들었고, 그 영화는 2022년 송강호에게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안겼다. 한국 관객에게 이 이력은 단순한 필모그래피가 아니라, 이미 한 차례 깊이 교류한 창작자의 증거처럼 남아 있다.
이 때문에 이번 내한은 일본 영화 홍보 행사이면서도 동시에 한국 관객과 다시 관계를 확인하는 자리가 된다. 외국 감독의 작품을 볼 때 관객은 종종 자막 너머의 거리감을 느끼지만, 고레에다 감독의 경우에는 그 거리가 상대적으로 짧다. 한국 배우와 함께 작업했던 경험, 한국 현장을 이해하는 태도, 그리고 공개석상에서 드러난 애정의 언어가 그 틈을 줄여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이번 자리에서 한국에서 이른 개봉을 한 덕에 배우 쿠와키 리무와 함께 한국을 찾아 기쁘다고도 말했다고 전해졌다. 이 대목은 한국 시장이 단순한 해외 개봉지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작품을 가장 먼저 세심하게 반응해 줄 수 있는 관객층을 가진 곳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신뢰는 한 편의 영화 흥행 여부를 넘어, 동아시아 영화 교류의 감정적 기반을 만드는 요소로 읽힌다.
“안 보이는 것도 봐주시길”, 이번 작품을 읽는 하나의 열쇠
이번 간담회에서 가장 오래 남는 문장은 “안 보이는 것도 봐주시길”이라는 부탁이다. 이 말은 신작의 줄거리와 자연스럽게 맞물린다. 눈에 보이는 것은 휴머노이드라는 존재이지만, 그 이면에서 관객이 보아야 할 것은 상실을 견디는 방식, 가족이 기억을 다루는 태도, 그리고 인간다움의 기준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홍보 현장에서 감독이 이런 표현을 택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작품의 볼거리보다 감정의 결을 먼저 짚어 달라고 요청한 셈이다. 이는 관객이 이야기의 외형적 장치에만 머무르지 않기를 바라는 태도이며, 동시에 자신이 만든 영화가 설명보다 여운으로 작동하길 바라는 연출자의 자신감으로도 해석된다.
이 문장은 한국 관객에게도 익숙한 고레에다식 감상의 문을 연다. 그의 영화는 대개 큰 사건을 요란하게 밀어붙이기보다, 인물 사이의 침묵과 표정, 말하지 못한 감정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남긴다. 그래서 “안 보이는 것”을 보라는 요청은 단순한 홍보 문구가 아니라, 이 영화를 가장 정확하게 읽는 방법에 가까운 안내문으로 받아들여진다.
지금 한국 영화 관객에게 이 내한이 던지는 의미
오늘 한국 연예 뉴스의 관점에서 보면, 이번 내한은 스타 한 명의 방문을 넘어 한국 관객의 위상을 다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한국은 이제 자국 콘텐츠만 소비하는 시장이 아니라, 해외 감독과 배우가 먼저 반응을 확인하고 싶은 관객층을 가진 곳으로 기능하고 있다. 고레에다 감독이 1년 만에 다시 서울을 찾은 사실은 그 상징성을 또렷하게 드러낸다.
동시에 이 만남은 한국 관객의 감수성이 어디에 닿아 있는지도 보여준다. 거대한 액션이나 자극적인 설정이 아니라, 가족의 상실과 회복,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의 층위를 묻는 작품이 주요 뉴스가 되는 것은 한국의 영화 팬층이 여전히 서사와 정서의 밀도를 중요하게 본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런 흐름은 K-콘텐츠 열풍 속에서도 관객의 취향이 단선적이지 않다는 점을 말해준다.
이 점에서 이번 소식은 글로벌 독자에게도 흥미롭다. 한국에서 주목받는 연예 뉴스가 반드시 거대한 아이돌 무대나 흥행 기록만은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한국 관객이 국경을 넘어 감정의 정밀함을 읽어내는 영화적 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결국 이 내한은 한 편의 영화 홍보를 넘어, 한국과 일본의 창작자가 관객을 사이에 두고 어떻게 다시 연결되는지를 보여주는 현재진행형 장면으로 남는다.
출처
· 中상하이국제영화제서 '어쩔수가없다' 등 韓영화 4편 상영 (연합뉴스)
· 고레에다 감독 "한국에 특별한 애정…안 보이는 것도 봐주시길" (연합뉴스)
· '망한 아이돌'의 대기업 취준기…'망돌의 이력서' 출간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