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차세대 고대역폭 메모리(HBM) 반도체 시장에서 글로벌 패권을 놓고 치열한 기술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두 기업의 HBM 기술력이 국가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최근 세계 최초로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인 HBM4 개발을 완료하고 양산 체제를 구축했다. 이번 신제품은 5세대 HBM3E 대비 데이터 전송 대역폭을 2배로 확대하고 전력 효율을 40% 이상 향상시켰으며, 동작 속도도 초당 10기가비트(Gbps)를 초과하는 혁신적인 성능을 구현했다. 이는 AI 학습과 추론 작업에 필수적인 대용량 데이터 처리 능력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삼성전자의 반격, HBM3E 엔비디아 검증 통과
한편 삼성전자도 지난달 12단 HBM3E 제품의 엔비디아 기술 검증 통과 사실을 공식 발표하며 반격에 나섰다. 그동안 SK하이닉스가 선점했던 엔비디아향 HBM 공급 시장에 삼성전자가 본격 진입하면서 양사 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HBM3E 양산을 본격화하는 동시에 2026년부터는 6세대 HBM4 제품 출하에 돌입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7월 글로벌 고객사에 HBM4 샘플을 출하했으며, D램과 로직칩 모두에 10나노급 6세대 공정과 자사 4나노미터 파운드리 공정을 적용해 기술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특히 김형태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3분기 매출이 전 분기 대비 13.2% 증가한 84조4000억원, 영업이익은 116.3% 급증한 10조1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세계 HBM 시장 90% 독점하는 한국 기업들
현재 세계 HBM 시장은 SK하이닉스가 53%, 삼성전자가 38%의 점유율로 합계 90% 이상을 차지하는 독과점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AI 반도체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HBM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이에 따라 두 기업의 목표주가도 연일 상향 조정되고 있다. 신한투자증권은 SK하이닉스의 목표주가를 기존 38만원에서 50만원으로 대폭 상향했으며, SK증권도 48만원을 제시했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는 2025년 HBM4 출하량에서 SK하이닉스가 59%로 선두를 달리고,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이 각각 약 20%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한국 기업들이 차세대 AI 메모리 시장에서도 압도적 우위를 지속할 것임을 시사한다.
한편 정부도 국산 AI 반도체 육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정부는 2030년까지 국내 데이터센터 시장의 국산 AI반도체 점유율을 80%까지 확대하고, 총 8262억원을 투자하는 고도화 로드맵을 발표했다. AI 반도체 스타트업 리벨리온과 딥엑스 등도 각각 인도네시아 에너지 기업의 투자 유치와 삼성 파운드리를 통한 5나노 공정 AI칩 양산 등 가시적 성과를 내고 있어 한국 AI 반도체 생태계의 성장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AI 붐으로 반도체 산업이 슈퍼사이클에 진입하면서 HBM 기술력이 국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부상했다”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기술 경쟁이 한국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리더십을 더욱 공고히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