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에 따르면 국내 블루스 밴드 ‘최항석과 부기몬스터’는 지난 3일 삶의 희로애락을 담은 정규 4집 ‘휴먼 스크램블’(Human Scramble)을 발표한 바 있다. 팀을 이끄는 최항석은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이번 앨범에 담은 경험과 메시지를 설명했다.
1975년생으로 51세인 최항석은 음악뿐 아니라 다양한 일을 하며 겪은 상처와 자신의 실수에서 비롯된 감정을 노랫말과 멜로디로 옮겼다. 화려한 성공담보다 누구나 살아가며 마주할 수 있는 막막함과 후회, 다시 일어서는 순간을 음악의 중심에 놓았다는 점에서 이번 작품은 한 음악인의 일기이자 보편적인 삶의 기록에 가깝다.
특히 타이틀곡 ‘막다른 길’은 제목부터 이번 앨범의 방향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더 나아갈 수 없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몸을 돌리면 새로운 출발점이 보일 수 있다는 발상이다. 블루스 특유의 솔직한 감정 표현을 통해 좌절을 숨기기보다 정면으로 바라보고,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할 가능성을 찾는다.
삶의 뒤엉킨 순간을 담은 ‘휴먼 스크램블’
앨범명 ‘휴먼 스크램블’은 사람의 감정과 경험이 단순한 한 가지 색으로 정리되지 않는다는 인상을 준다. 기쁨과 슬픔, 상처와 회복, 실수와 성찰이 서로 뒤섞인 상태를 하나의 음악적 풍경으로 제시한다. 최항석과 부기몬스터는 이 복잡한 감정을 정돈된 교훈으로 바꾸기보다 블루스라는 형식 안에서 있는 그대로 들려준다.
최항석이 이번 앨범의 재료로 삼은 것은 자신의 실제 삶에서 느낀 감정이다. 음악 외의 여러 일을 경험하면서 받은 상처뿐 아니라 스스로 범한 실수도 창작의 출발점이 됐다. 자신을 힘들게 한 외부 상황만 이야기하지 않고 자신의 부족함까지 함께 바라봤다는 점에서 앨범의 시선은 한층 내밀하다.
이러한 접근은 ‘휴먼 스크램블’을 단순한 감상용 음반이 아니라 한 사람이 지나온 시간을 압축한 기록으로 읽게 한다. 최항석의 개인적 경험에서 시작된 노래이지만, 막다른 상황과 후회, 재출발이라는 감정은 특정 세대나 지역에만 머물지 않는다. 한국어 가사를 모르는 해외 청자에게도 연주와 목소리에 담긴 정서가 먼저 전달될 수 있는 구조로 평가된다.
‘막다른 길’을 끝이 아닌 출발로 바꾸다
타이틀곡 ‘막다른 길’의 핵심은 절망을 부정하지 않는 데 있다. 길이 막혀 있다는 감각을 억지로 지우거나 가볍게 넘기지 않고, 그 지점에서 방향을 바꾸는 행동에 의미를 부여한다. 앞으로 갈 수 없다면 뒤를 돌아 다시 걸을 수 있다는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구체적이다.
최항석은 막다른 길에 도착하더라도 뒤를 돌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길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치이며 구석으로 내몰린 기분이 들 때에도 다시 출발할 수 있다는 뜻을 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는 실패가 사라진다는 약속이 아니라 실패 이후에도 움직일 수 있다는 제안에 가깝다.
이 노래가 전하는 위로는 상황을 과장되게 낙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힘을 얻는다. 막다른 길은 여전히 막혀 있고, 그곳에 도달한 사람이 느끼는 답답함도 그대로 남아 있다. 다만 같은 장소를 끝으로 해석할지, 새로운 방향을 찾는 계기로 받아들일지는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노래가 제시하는 변화다.
전원이 함께 연주한 원테이크의 생동감
‘막다른 길’은 모든 멤버가 동시에 연주하는 ‘원테이크 라이브 레코딩’ 방식으로 녹음됐다. 악기별 연주를 따로 쌓아 올리는 방식이 아니라 한 번의 흐름 속에서 밴드 전체의 호흡을 담는 접근이다. 멤버들이 같은 순간에 주고받는 반응과 긴장감이 곡의 중요한 일부가 된 셈이다.
이 녹음 방식은 노래의 주제와도 맞물린다. 삶의 막막한 순간은 완벽하게 수정된 장면처럼 찾아오지 않으며, 사람은 그때그때 주변과 반응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여러 연주자가 한 공간에서 동시에 만들어 내는 소리는 이런 불확실성과 즉각성을 음악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로 분석된다.
원테이크라는 선택을 단지 기술적인 특징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한 사람의 작은 흔들림도 전체 연주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밴드의 집중력과 상호 신뢰가 중요해진다. 최항석과 부기몬스터는 이 방식으로 삶의 막막함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감정을 연주의 질감과 호흡으로 구현했다.
50대 음악인이 꺼낸 솔직한 자기 기록
51세에 정규 4집을 내놓은 최항석은 자신의 나이와 경험을 감추지 않고 창작의 중심에 세웠다. 젊음이나 새로움만을 강조하기보다 오랜 시간 쌓인 상처와 실수, 그 과정에서 발견한 감정을 노래로 정리했다. 이는 시간이 흐른 뒤에야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의 깊이를 보여준다.
그가 음악 외에 다양한 일을 하며 겪은 경험은 이번 앨범의 현실감을 높이는 배경이다. 무대와 녹음실 안에서만 얻은 이야기가 아니라 일상에서 사람들과 부딪치며 느낀 감정이 노래로 이어졌다. 그래서 ‘휴먼 스크램블’에 담긴 희로애락은 추상적인 개념보다 생활 속 감각에 가까이 닿는다.
자신이 받은 상처와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함께 이야기한다는 태도도 눈에 띈다. 상처의 원인을 외부에만 돌리지 않고 자기 성찰까지 음악에 포함하면서, 앨범은 일방적인 하소연을 넘어선다. 듣는 사람 역시 타인에게 받은 상처와 자신이 남긴 상처를 동시에 돌아보게 만드는 구성으로 해석할 수 있다.
블루스가 건네는 위로의 방식
최항석은 블루스가 기쁠 때나 우울할 때나 듣는 사람에게 위로를 주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음악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위로는 슬픔을 빠르게 지우는 과정이라기보다 감정을 충분히 드러내고 견디게 하는 힘을 뜻한다. 즐거운 순간과 우울한 순간을 모두 품을 수 있다는 설명은 이번 앨범의 성격과도 맞닿는다.
‘휴먼 스크램블’이 삶의 여러 감정을 한데 담은 이유도 블루스에 대한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기쁨만 골라내거나 우울만 확대하지 않고 서로 다른 감정을 한 사람의 삶 안에 함께 둔다. 모순된 감정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이 앨범이 제시하는 첫 번째 위로로 평가된다.
두 번째 위로는 연주 자체에서 나온다. ‘막다른 길’의 원테이크 녹음은 멤버들이 같은 시간과 흐름을 공유하며 곡을 완성하는 장면을 소리에 남긴다. 혼자 감당해야 할 것처럼 보이는 어려움도 함께 호흡하는 과정에서 다른 형태로 표현될 수 있다는 점이 밴드 음악의 특성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개인의 일기에서 모두의 이야기로
이번 정규 4집은 최항석의 구체적인 경험에서 출발했지만, 노래가 향하는 곳은 개인의 기억에만 머물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치여 구석으로 내몰린 듯한 기분이나 더 이상 갈 곳이 없다고 느끼는 순간은 서로 다른 문화권의 청자도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이다. 개인의 고백이 보편성을 얻는 지점이다.
앨범의 메시지가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거대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항석은 막힌 길을 단숨에 뚫을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돌아서서 다시 출발할 수 있다는 작고 현실적인 선택을 강조하며, 변화의 가능성을 청자의 손에 남겨 둔다.
이 같은 태도는 팬에게 일방적으로 희망을 선언하는 방식과 다르다. 음악인은 자신이 겪은 상처와 실수를 먼저 공개하고, 그 경험에서 발견한 생각을 노래로 나눈다. 듣는 사람은 그 고백에 자신의 기억을 포개며 각자 다른 의미의 ‘막다른 길’과 ‘새로운 시작’을 떠올릴 수 있다.
한국 밴드 음악이 세계 청자에게 닿는 지점
최항석과 부기몬스터의 정규 4집은 한국에서 만들어진 블루스 음악이지만, 중심에 놓인 감정은 국경을 크게 타지 않는다. 삶에서 마주하는 기쁨과 슬픔, 관계 속 상처, 자신의 실수에 대한 후회, 다시 시작하려는 의지는 번역 이전에도 이해할 수 있는 인간적 주제다.
특히 동시 연주로 완성한 ‘막다른 길’은 언어를 넘어 밴드의 호흡을 직접 전달한다. 가사의 세부 의미를 모두 알지 못하더라도 연주의 긴장과 움직임, 함께 소리를 만들어 가는 감각은 들을 수 있다. 자동 번역으로 앨범의 이야기를 접하는 글로벌 독자에게도 음악과 메시지가 서로를 보완하는 대목이다.
‘휴먼 스크램블’은 막다른 순간을 성공 서사의 반대편에 놓지 않는다. 끝이라고 생각했던 장소에서 몸을 돌리는 순간, 같은 길이 새로운 시작으로 보일 수 있다는 관점을 들려준다. 세계의 음악 팬에게 이 한국의 블루스 앨범이 흥미로운 이유는 한 음악인의 솔직한 일기가 누구에게나 필요한 재출발의 노래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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