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아시아유도선수권 90㎏급 금메달…한국 중량급의 현재를 증명했다

김종훈, 아시아유도선수권 90㎏급 금메달…한국 중량급의 현재를 증명했다

중량급의 기다림 끝에 나온 금메달

한국 남자 유도가 오랫동안 기다려온 장면이 2026년 4월 다시 나왔다. 김종훈은 18일 중국 네이멍구 어얼둬쓰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6 아시아유도선수권대회 남자 90㎏급 결승에서 중국의 부허비리거를 꺾고 정상에 올랐다. 세계랭킹 13위의 선수가 세계랭킹 127위의 홈 선수와 맞붙은 경기였지만, 이 승리는 단순한 ‘이변 방지’가 아니라 한국 중량급의 현재 위치를 확인시킨 결과라는 점에서 더 크게 읽힌다.

보도에 따르면 김종훈은 결승에서 안뒤축걸기 유효승으로 승부를 결정했다. 경기 초반 상대와 기 싸움을 벌이며 지도 1개씩을 주고받았고, 시간이 흐를수록 도복 싸움과 중심 싸움이 길어지는 흐름 속에서 결정적 틈을 놓치지 않았다. 종료 1분 45초를 남기고 상대가 도복 잡기에 전념하는 순간 허점을 파고들어 점수를 만들었다는 대목은, 이날 금메달이 힘만으로 얻은 결과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아시아선수권 우승은 언제나 무게가 있다. 세계선수권이나 올림픽처럼 절대적 기준으로 소비되지는 않더라도, 아시아 무대는 유도에서 기술적 완성도와 전술 적응력을 동시에 요구하는 시험대에 가깝다. 특히 90㎏급은 체격과 파워만으로 버티기 어려운 체급이다. 상대를 무너뜨릴 기술의 질, 잡기 싸움을 이겨내는 손기술, 그리고 짧은 기회에서 점수를 만드는 판단력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 김종훈의 우승은 바로 그 조건들을 한 경기 안에서 증명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결승 한판이 보여준 경기 운영의 완성도

이번 결승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김종훈의 강점은 ‘화려한 한방’보다 경기 운영 능력에 더 가까웠다. 세계랭킹 격차만 보면 일방적 흐름을 예상하기 쉽지만, 국제대회 결승은 늘 다른 결을 갖는다. 홈 이점이 있는 선수는 초반부터 적극적으로 몸을 부딪치며 리듬을 흔들고, 유력 선수는 그 압박을 견디며 자신의 타이밍을 찾아야 한다. 김종훈은 성급하게 승부를 서두르지 않고, 지도 상황을 관리하면서 결정 장면을 기다렸다.

기 싸움 끝에 나온 안뒤축걸기 유효승은 더욱 상징적이다. 도복을 잡는 순간의 균형, 상대 중심축이 흔들리는 찰나를 포착하는 감각, 그리고 기술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자신감이 모두 맞물려야 가능한 점수다. 단순히 상대보다 힘이 세서 나온 결과가 아니라, 상대가 무엇에 집중하는지 읽고 그 방향의 반대편으로 승부를 걸었다는 점에서 높은 완성도를 보여줬다. 국제무대에서 한 단계 올라선 선수들은 대개 이런 장면을 통해 구분된다.

유도는 기록 경기보다 서사가 늦게 쌓이는 종목이다. 누가 몇 초 만에 이겼는지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다. 이날 김종훈의 결승은 그런 의미에서 숫자보다 내용이 더 또렷했다. 지도 1개씩이 오간 초반, 길어진 탐색전, 종료 1분 45초를 남긴 결단이라는 구조는 한 선수가 경기 전체를 어떻게 설계했는지를 보여준다. 우승이라는 결과 못지않게, 우승에 이르는 과정이 안정적이었다는 점이 향후 국제대회 경쟁력의 근거가 된다.

‘파리의 반짝’이 아니었음을 증명한 우승

김종훈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분기점은 2025 파리 그랜드슬램이었다. 당시 그는 세계랭킹 111위에 머물렀지만, 2023년 세계선수권대회 챔피언 루카 마이수라제를 꺾고 우승하면서 급격히 존재감을 키웠다. 국제무대에서 뚜렷한 성과가 많지 않았던 선수가 정상급 선수를 넘어섰다는 사실은 충격에 가까웠고, 한국 남자 유도 중량급의 새 얼굴이 등장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단발성 성과는 늘 의심을 동반한다. 한 대회에서의 돌풍은 상대의 컨디션, 대진표, 경기 당일의 흐름이 겹쳐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선수의 진짜 가치는 다음 결과가 말해준다. 이번 아시아선수권 우승은 바로 그 ‘다음 결과’다. 파리에서의 우승이 우연이 아니며, 세계랭킹 상승이 일시적 착시도 아니라는 점을 김종훈 스스로 입증한 셈이다.

세계랭킹 111위였던 선수가 13위까지 올라온 과정은 단순한 숫자 이동이 아니다. 국제대회에서 한 번 깜짝 우승했다고 해서 랭킹이 곧장 최상위권으로 점프하는 구조는 아니다. 일정한 성적과 꾸준한 승리가 누적돼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 금메달은 김종훈이 ‘유망주’에서 ‘검증된 주전급’으로 분류될 수 있는 근거를 하나 더 쌓은 대회다. 한국 유도 입장에서도 더는 미래형 자원이 아니라, 지금 당장 메달을 논할 수 있는 선수로 취급할 이유가 분명해졌다.

한국 남자 유도 중량급에 던진 현실적 신호

김종훈의 우승이 특별한 이유는 개인 성과를 넘어 한국 남자 유도 중량급 전반에 던지는 신호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한국 유도는 전통적으로 기술 유도, 빠른 전개, 세밀한 운영에서 강점을 보였지만, 국제무대가 갈수록 체격과 파워, 그리고 강한 손기술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중량급 경쟁에서는 늘 더 많은 증명이 필요했다. 그래서 중량급에서 나오는 한 개의 금메달은 종종 메달 개수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특히 90㎏급은 중량급의 관문 같은 체급으로 읽힌다. 무제한에 가까운 압박이 쏟아지는 최중량급과는 결이 다르지만, 힘과 기술의 비중이 절묘하게 맞물린다. 이 체급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선수는 상위 국제대회에서도 전술적으로 다양한 대응이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기 쉽다. 김종훈이 이번 결승에서 보여준 잡기 싸움 대응과 순간 기술 구사는 바로 그런 체급 특성을 견딘 결과였다.

더 중요한 것은 대표팀 운영의 관점이다. 국제대회에서 확실한 카드를 한 장 확보하면, 전체 선수단의 대진 전략과 메달 계산이 달라진다. 한 선수의 성적이 곧장 팀 전체의 구조를 바꾸지는 않더라도, 특정 체급에서 안정적으로 4강과 결승을 기대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준비 방식이 달라진다. 김종훈의 우승은 한국 남자 유도가 중량급에서 다시 ‘버티는 팀’이 아니라 ‘겨루는 팀’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현실적 근거를 제시했다.

결국 국제무대는 재능보다 반복을 본다

스포츠에서 가장 과대평가되기 쉬운 단어는 ‘재능’이다. 한 번 터지면 재능이라 부르고, 잠잠해지면 경험 부족이라 말한다. 그러나 국제 유도는 대개 그보다 냉정하다. 상대들은 곧바로 영상을 분석하고, 장점은 봉쇄하려 들며, 한 번 통했던 패턴은 두 번째부터 훨씬 어려워진다. 그래서 정상급 선수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재능 자체보다 반복 가능한 승리 방식이다.

김종훈이 이번 대회에서 확인한 가치도 여기에 있다. 그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국제무대에서 뚜렷한 성과가 많지 않았던 선수였고, 파리 그랜드슬램 우승으로 급부상했다. 그리고 이번 아시아선수권에서 다시 금메달을 따냈다. 이 흐름은 ‘깜짝 등장’의 서사를 지나, 적어도 당분간은 국제대회에서 꾸준히 상대의 견제를 받게 될 선수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제부터는 상대가 김종훈을 연구한 상태에서 맞붙게 된다는 점이 오히려 새로운 출발선이다.

그렇다고 전망을 과장할 필요는 없다. 아시아선수권 우승 하나만으로 모든 대회의 메달 가능성을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현시점에서 분명한 것은 있다. 김종훈은 이제 누군가의 성장 가능성을 설명할 때 호출되는 이름이 아니라, 실제 성과를 든 채 다음 대회를 준비하는 선수라는 점이다. 국제무대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설명은 결국 최근의 결과이고, 그는 그 결과를 연속해서 제출하고 있다.

이번 금메달이 남긴 과제와 다음 문장

이번 우승은 축하로 끝낼 일만은 아니다. 한국 유도는 이런 성과가 나왔을 때 그것을 개인의 반짝 장면으로 소비하지 않고, 다음 성과로 연결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선수 개인에게는 더 정교한 맞춤 준비와 국제대회 경험 축적이 필요하고, 대표팀에는 특정 체급의 성과를 전체 경쟁력 확대로 이어 붙이는 기획이 필요하다. 금메달 하나가 시스템을 증명하지는 않지만, 시스템이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지는 선명하게 보여준다.

또한 이번 우승은 한국 스포츠가 여전히 ‘당장 성적이 나는 종목’과 ‘서서히 축적되는 종목’을 구분해 바라봐야 한다는 점도 일깨운다. 유도는 한 번의 스타 탄생보다, 수차례 국제대회에서 흔들리지 않는 결과를 만들어낼 때 비로소 강국의 위상을 회복할 수 있다. 김종훈은 지금 그 첫 단계와 두 번째 단계를 연이어 통과한 상태다. 파리에서 이름을 알렸고, 아시아선수권에서 그것을 재확인했다.

결국 2026년 4월의 이 금메달은 한 선수의 우승 기록으로만 남지 않는다. 한국 남자 유도 중량급이 다시 말할 근거를 얻은 날, 그리고 김종훈이라는 이름이 기대주를 넘어 대표팀의 실전 카드로 굳어지기 시작한 날로 기억될 가능성이 크다. 국제무대는 언제나 다음 승리를 요구하지만, 그 다음 승리를 기대하게 만드는 선수는 흔치 않다. 이번 우승은 바로 그 드문 단계에 김종훈이 도달했음을 보여준 가장 분명한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