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택 임대 시장이 근본적인 구조 변화를 겪고 있다. 전세 사기 여파와 함께 시작된 전세에서 월세로의 대전환이 2025년 9월 현재 돌이킬 수 없는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서울 아파트 세입자 절반이 매달 100만원 이상의 월세를 부담하는 상황에서, 전국적으로 40% 감소한 분양 물량은 주거비 부담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서울시가 발표한 최신 자료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세입자의 50.3%가 월 100만원 이상의 월세를 지불하고 있으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15% 증가한 수치다. 특히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의 경우 월세 150만원 이상 지불 비율이 60%를 넘어서며, 서울 주거비 부담이 극한 상황에 도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전세금 2억원 이상 구간에서 전세 사기 피해가 집중되면서 임대인들이 월세 임대로 급속히 전환한 결과다.
전세 시장의 구조적 붕괴
전세 시장 붕괴는 단순히 가격 상승을 넘어 시장 자체의 존재 의미를 위협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자료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전세 신규 계약 비중은 전체 임대 계약의 23.4%로 떨어졌으며, 이는 2020년 45.2%에서 절반 수준으로 급감한 것이다. 특히 서울 지역의 경우 전세 비중이 18.9%까지 하락하여 월세가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구조로 완전히 바뀌었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전세보증보험 가입 요건 강화와 함께 임대인들의 리스크 회피 성향이 크게 작용했다. 2022년 하반기부터 본격화된 전세 사기 사태로 인해 대규모 전세 자금을 관리해야 하는 부담을 느낀 임대인들이 월세로 전환을 가속화한 것이다. 실제로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전세 사기 피해 신고가 집중된 지역일수록 월세 전환율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전세 시장 축소가 세입자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다는 점이다. 동일한 아파트를 전세로 계약할 경우 2억5천만원이었던 물건이 월세로 전환되면서 보증금 5천만원에 월세 180만원으로 책정되는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다. 이는 연간 2,160만원의 월세 부담으로, 전세금 대비 8.6%의 수익률에 해당하는 높은 수준이다.
공급 절벽과 로또 청약 열풍
주거비 부담 증가와 함께 주택 공급 부족 문제도 심각해지고 있다. 2025년 전국 분양 물량은 전년 대비 40% 감소한 상황에서, 특히 서울과 수도권의 공급 부족은 극심한 수준에 달했다. 이로 인해 9월 분양된 잠실 르엘의 경우 1순위 경쟁률이 632대 1을 기록하며 ’10억 로또’라는 별명을 얻었다.
KB국민은행 연구소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주택 착공은 38만호로 예상되는 반면 준공은 36만호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연간 주택 수요 추정치인 45만호를 크게 밑도는 수준으로, 공급 부족이 구조적으로 지속될 것임을 의미한다. 특히 수도권의 경우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지연으로 인해 신규 공급이 더욱 제한적인 상황이다.
이러한 공급 부족은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서울 신규 분양 아파트의 평균 분양가는 3.3㎡당 3,500만원을 넘어서며, 강남권의 경우 5,000만원을 상회하는 초고가 분양이 일반화되고 있다. 청약 당첨 시 시세와의 차이로 인한 시세차익이 평균 3억원을 넘어서면서, 청약이 사실상 복권과 같은 성격을 띠게 된 것이다.
금리 인하의 역설과 주거비 부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정책이 오히려 주거비 부담을 가중시키는 역설적 상황도 나타나고 있다. 금리 인하로 전세자금대출 금리가 낮아지면서 일시적으로 전세 수요가 증가할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전세 물량 자체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전세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9월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은 전월 대비 0.3% 상승하며, 월세 전환 가속화에도 불구하고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월세 시장에서는 금리 인하 효과가 제한적이다. 월세는 임대인의 투자 수익률 기대와 직결되어 있어, 금리 인하보다는 주변 시세와 공급-수요 상황에 더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산 가격 상승 기대심리가 높아지면서 임대료 인상 압력이 커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3분기 주택연금 신청이 전년 동기 대비 2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고령층 주택 소유자들이 임대 수익 확보를 위해 월세 임대를 늘리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로 해석된다.
정책적 대응과 한계
정부는 주거비 부담 완화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에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임대차보호법의 전세보증보험 의무화는 전세 시장 안정화에 기여했지만, 동시에 임대인들의 월세 전환을 가속화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월세 상한제 도입 논의도 있지만, 임대 물량 자체의 감소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 상황이다.
공급 확대를 위한 3기 신도시 개발과 GTX 연계 개발도 추진되고 있지만, 실제 입주가 가능한 시기는 2028년 이후로 예상되어 당장의 공급 부족 해결에는 한계가 있다. 더욱이 건설비 상승과 규제 강화로 인해 신규 공급 물량의 분양가도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어, 서민 주거 안정성 확보에는 근본적인 어려움이 있다.
전문가들은 2025년 하반기에도 이러한 트렌드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세 시장의 구조적 변화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으며, 월세 100만원 시대는 서울 지역에서 새로운 표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의 공급 확대 정책과 함께 임대료 부담 완화를 위한 실질적인 지원 방안 마련이 시급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결국 한국 주택 임대 시장은 전세 중심에서 월세 중심으로의 완전한 패러다임 전환을 겪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시장 조정을 넘어 주거 문화의 근본적 변화를 의미한다. 공급 부족과 높은 주거비 부담이라는 이중고 속에서 서민들의 주거 안정성 확보를 위한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정책 대응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