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관리청, ‘손상관리종합계획’ 발표… 사고 예방 중심 정책 전환
질병관리청이 2025년 9월 24일 ‘손상관리종합계획’을 발표하며 ‘손상 걱정 없는 건강한 사회’ 실현을 목표로 제시했다. 손상(injury)은 교통사고, 낙상, 익사, 화상, 중독 등 외부 요인에 의한 신체 손해를 의미하며, 우리나라에서 암, 심혈관질환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사망 원인이다. 이번 계획은 사후 치료 중심에서 사전 예방 중심으로 정책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 핵심이다.
손상의 심각성과 사회적 비용
2024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에서 손상으로 인한 사망자는 연간 약 3만 2천 명으로, 전체 사망의 10.5%를 차지한다. 특히 1-44세 연령대에서는 손상이 사망 원인 1위다. 교통사고가 전체 손상 사망의 28%로 가장 많고, 자살(25%), 낙상(18%), 질식(8%), 익사(4%) 순이다. 비사망 손상도 연간 800만 건 이상 발생해 응급실 방문과 입원 치료가 필요하며, 이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은 연간 30조 원을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손상의 대부분이 예방 가능하다는 점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적절한 예방 정책과 안전 환경 조성으로 손상의 50% 이상을 줄일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선진국들은 이미 손상 예방을 국가 보건 정책의 우선순위로 설정하고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한국도 이제 손상을 ‘불운한 사고’가 아닌 ‘예방 가능한 공중보건 문제’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손상관리종합계획의 주요 내용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종합계획은 5개 분야 20개 과제로 구성된다. 첫째, 손상 감시 체계 구축이다. 현재 손상 데이터는 경찰청(교통사고), 소방청(응급 출동), 건강보험심사평가원(치료 기록) 등 각 기관에 분산돼 있어 통합 분석이 어렵다. 질병관리청은 2026년까지 ‘국가손상정보시스템’을 구축해 실시간 데이터 수집과 분석을 가능하게 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손상 발생 패턴을 파악하고 고위험 지역과 집단을 조기에 식별할 수 있다.
둘째, 생애주기별 맞춤 예방 전략이다. 영유아는 질식과 익사, 학령기 아동은 교통사고와 스포츠 손상, 청장년은 직업 관련 손상, 노년층은 낙상이 주요 위험 요인이다. 각 연령대에 맞는 안전교육, 환경 개선, 보호장구 보급 등을 추진한다. 예를 들어 65세 이상 노인 가구에 미끄럼 방지 매트와 안전 손잡이를 보급하고, 초등학교에 교통안전 교육을 의무화하며, 건설 현장의 안전 장비 착용을 강화한다.
기대 효과와 과제
셋째, 지역사회 기반 손상 예방 네트워크 구축이다. 보건소, 소방서, 경찰서, 지역 의료기관이 협력해 손상 예방 활동을 펼친다. 넷째, 손상 응급 치료 체계 강화다. 중증 외상 환자를 신속하게 치료할 수 있는 권역 외상센터를 확충하고, 응급 헬기와 구급차 시스템을 개선한다. 다섯째, 손상 예방 연구와 인력 양성이다. 손상 역학 전문가를 양성하고, 효과적인 예방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에 투자한다.
질병관리청은 이번 종합계획을 통해 2030년까지 손상 사망률을 현재의 70%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는 연간 약 9천 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수치다. 백경란 질병관리청장은 “손상은 개인의 부주의 탓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공중보건 과제”라며 “안전한 환경 조성과 예방 문화 확산에 정부와 지자체, 민간이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계획이 한국의 손상 사망률을 낮추고 국민의 안전을 높이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