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통공사가 올해 5월 발생한 지하철 5호선 방화 사건을 계기로 지하철 안전 시스템을 전면 개편하고 있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의 교훈을 바탕으로 구축된 기존 안전망이 큰 피해를 막아냈지만, 보다 근본적인 예방 체계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지난 5월 31일 오전 8시 42분, 서울 지하철 5호선 한강 하저터널 구간에서 60대 남성이 토치와 기름통을 이용해 방화를 시도한 사건은 한국 도시철도 안전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다행히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전국 모든 전동차에 적용된 불연재·극난연재 소재와 승객들의 침착한 대응 덕분에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고 6명의 경상자만 발생했다.
그러나 400여 명의 승객이 탑승한 밀폐된 지하공간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여전히 존재하는 위험요소들을 명확히 드러냈다. 서울교통공사는 이를 계기로 예방 중심의 안전 시스템 구축에 나섰다.
AI 기반 위험 탐지 시스템 도입
서울교통공사는 2025년 하반기부터 인공지능(AI) 기반 위험물질 탐지 시스템을 지하철 주요 역사에 순차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이 시스템은 CCTV 영상 분석을 통해 인화성 물질, 가연성 액체 등 위험물질을 실시간으로 식별하고 즉시 관제센터에 경보를 전송한다.
특히 5호선 방화 사건에서 사용된 토치와 기름통 같은 도구들을 사전에 탐지할 수 있는 알고리즘이 핵심이다. 시스템은 승객의 행동 패턴까지 분석해 의심 행위를 조기 포착하는 기능도 갖췄다.
한국교통대학교 도시철도학과 김철민 교수는 “지하철 화재는 밀폐된 공간의 특성상 연기와 유독가스로 인한 피해가 급속히 확산될 수 있어 예방이 최우선”이라며 “AI 시스템을 통한 선제적 대응이 핵심”이라고 평가했다.
승무원 대응 매뉴얼 전면 개정
지하철 승무원들의 비상상황 대응 능력 강화도 추진된다. 기존 매뉴얼은 화재 발생 후 대처에 중점을 뒀다면, 개정된 매뉴얼은 위험 징후 포착부터 승객 대피까지의 전 과정을 세분화해 다룬다.
특히 5호선 사건에서 기관사가 보여준 침착한 대응—즉시 열차 정차, 문 개방, 승객 대피 유도—이 피해 확산을 막은 것으로 분석되면서, 이러한 대응 절차가 표준화됐다. 모든 승무원은 월 1회 이상 실제 차량을 이용한 화재 대응 훈련을 받게 된다.
또한 승무원과 역무원 간 실시간 소통 체계도 개선됐다. 기존에는 무선 통신에 의존했지만, 이제는 GPS 연동 위치 정보와 차량 내 CCTV 영상을 관제센터에서 실시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서울교통공사 안전처 관계자는 “5호선 사건에서 승무원의 초기 대응이 참사를 막은 결정적 요인이었다”며 “이런 대응력을 시스템화해 누구나 동일한 수준의 대처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대구 지하철 참사 22주년을 맞은 올해, 한국의 도시철도 안전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불연재료 전면 적용, 스프링클러 시스템, 제연 설비 등 하드웨어적 안전장치는 이미 선진국 수준을 넘어섰다는 평가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기술적 완성도와 함께 인적 요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승객들의 안전 의식과 비상 상황 대응 능력, 승무원들의 전문성이 결합될 때 비로소 완전한 안전망이 구축된다는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이번 서울교통공사의 안전 시스템 개편 사례를 전국 도시철도 운영기관에 확산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2026년까지 전국 주요 지하철역에 AI 위험 탐지 시스템을 설치하고, 통합 관제 시스템을 구축해 광역 단위의 안전망을 완성한다는 목표다.
서울교통공사는 “대구 참사의 아픔을 교훈 삼아 구축한 안전 시스템이 5호선 사건에서 그 효과를 입증했다”며 “이제는 사고 대응을 넘어 사고 예방 중심의 선제적 안전망 구축에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2025년 하반기부터 본격 가동될 새로운 안전 시스템이 한국 도시철도의 안전성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무엇보다 시민들의 안전한 교통 이용권 보장이라는 근본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기술적 진보와 함께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가 뒷받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