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가 최근 몇 달간 보여준 성과 개선이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동안 글로벌 1위 TSMC와의 격차로 고전했던 삼성 파운드리가 주요 글로벌 고객사들로부터 대규모 수주를 따내며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는 평가다. 하지만 진정한 도약을 위해서는 차세대 HBM4 메모리 개발 성공이 관건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재용 회장의 리더십 변화가 가져온 성과**
업계 관계자들은 최근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의 회복세에 이재용 회장의 변화된 리더십 스타일이 큰 역할을 했다고 분석한다. 과거에 비해 훨씬 직접적이고 현장 중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고 있으며, 기술 개발진과의 소통도 대폭 늘렸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 회장이 파운드리 관련 주요 미팅에 직접 참석하고, 고객사와의 협상 테이블에도 나서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 임원진은 “회장님의 이런 변화가 조직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기술 개발 속도와 고객 응대 수준이 눈에 띄게 개선됐다”고 전했다.
이러한 변화는 실제 성과로도 이어지고 있다. 올해 상반기 삼성 파운드리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 3곳으로부터 총 150억 달러 규모의 수주를 확정했다고 업계에서는 추정하고 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60% 증가한 수준이다.
**2나노 공정 기술력, 시장에서 재평가받다**
삼성전자가 최근 확보한 대형 수주의 핵심은 2나노 공정 기술력이다. 이 기술은 기존 3나노 공정 대비 트랜지스터 밀도를 35% 높이면서도 전력 소모는 25% 줄일 수 있는 혁신적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반도체산업협회 전문가는 “삼성의 2나노 GAA(Gate-All-Around) 기술은 TSMC의 FinFET 기술과는 완전히 다른 접근 방식”이라며 “특히 AI 반도체와 모바일 프로세서에서 뛰어난 성능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삼성의 2나노 공정으로 제조된 테스트 칩들은 동일한 설계의 3나노 칩 대비 처리 속도가 12% 향상되고 전력 효율성은 20%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배터리 수명이 중요한 스마트폰과 전력 비용 절감이 핵심인 데이터센터용 프로세서에서 상당한 경쟁력을 의미한다.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판도 변화**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은 현재 TSMC가 약 54%의 점유율로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고, 삼성전자가 17% 정도로 2위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AI 반도체 수요 급증으로 시장 구조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TrendForce 리서치에 따르면, 2025년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규모는 1,020억 달러로 전년 대비 8.3%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AI 가속기와 고성능 컴퓨팅(HPC) 칩 수요가 전체 성장을 이끌고 있다.
이러한 시장 환경 변화는 삼성에게 기회가 되고 있다. 과거 스마트폰 중심이었던 모바일 프로세서 시장에서 벗어나 AI, 자동차, 서버 등 다양한 분야로 고객층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HBM4 개발이 성패의 관건**
하지만 삼성 파운드리가 진정한 글로벌 강자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바로 차세대 고대역폭 메모리(HBM4) 개발이다.
HBM4는 현재 양산 중인 HBM3 대비 대역폭이 50% 이상 향상되고 전력 효율성도 크게 개선된 차세대 메모리다. 특히 ChatGPT나 Claude 같은 대규모 AI 모델 학습과 추론에 필수적인 부품으로, 이 시장을 선점하는 업체가 AI 반도체 생태계의 주도권을 쥘 수 있다.
현재 HBM 시장은 SK하이닉스가 50% 이상의 점유율로 선두를 달리고 있고, 삼성전자가 30% 정도로 뒤를 따르고 있다. 하지만 HBM4 시장에서는 기술적 우위를 확보한 업체가 주도권을 가져갈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 DS(Device Solutions) 부문 관계자는 “HBM4 개발에 전사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며 “내년 상반기 샘플 출하를 목표로 개발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메모리와 파운드리 시너지 효과 극대화**
삼성전자가 가진 가장 큰 강점 중 하나는 메모리 반도체와 파운드리 사업을 동시에 운영한다는 점이다. 이는 TSMC나 다른 순수 파운드리 업체들이 갖지 못한 독특한 경쟁력이다.
특히 AI 반도체에서는 프로세서와 메모리의 통합 설계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삼성은 자체 HBM 기술과 첨단 파운드리 공정을 결합해 고객사에게 원스톱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업체다.
엔비디아의 최신 H200 GPU가 HBM3e 메모리를 탑재한 것처럼, 앞으로 AI 칩들은 프로세서와 메모리가 하나의 패키지로 통합되는 형태로 발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트렌드에서 삼성의 통합 역량은 큰 차별화 요소가 될 수 있다.
**투자자들의 관심도 급상승**
삼성전자 주가도 파운드리 사업 개선 소식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지난 3개월간 삼성전자 주가는 약 15% 상승했으며, 이 중 상당 부분이 파운드리 사업 전망 개선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삼성 파운드리의 수주 증가와 HBM4 개발 진척은 중장기 성장 동력을 확보했다는 의미”라며 “특히 AI 반도체 시장에서의 입지가 강화되면서 밸류에이션 리레이팅이 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삼성전자의 목표주가를 기존 7만원에서 8만5천원으로 상향 조정하며 “파운드리 사업의 구조적 개선이 주요 상승 요인”이라고 밝혔다.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한 과제**
하지만 삼성 파운드리가 글로벌 경쟁에서 완전히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남아있다.
우선 수율(yield) 개선이 시급하다. 새로운 공정 기술에서는 초기 수율이 낮은 것이 일반적이지만, 상업적 성공을 위해서는 빠른 수율 개선이 필요하다. 업계에서는 삼성의 2나노 공정 수율이 아직 TSMC의 3나노 공정에 비해 낮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한 고객 다변화도 중요한 과제다. 현재 삼성 파운드리의 매출 중 상당 부분이 자사 모바일 프로세서에 의존하고 있어, 외부 고객 확보가 필요한 상황이다.
**미래 전망과 전략 방향**
삼성전자는 2027년까지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을 현재 17%에서 25%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향후 3년간 총 35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투자 계획에는 평택과 용인에 새로운 파운드리 라인 구축, HBM4 양산 시설 확충, 미국 텍사스 파운드리 공장 건설 등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미국 공장은 2026년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어, 지정학적 리스크 완화와 현지 고객사 확보에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파운드리 사업의 경쟁력 있는 회복세가 확실해지고 있다”며 “HBM4 성공을 발판으로 AI 반도체 생태계에서 핵심 플레이어로 자리잡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업계에서는 향후 1-2년이 삼성 파운드리의 미래를 좌우하는 중요한 시기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HBM4 개발 성공 여부와 2나노 공정의 상업적 성과가 삼성이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확고한 2위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