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관리청이 세계보건기구(WHO)가 차기 팬데믹의 유력 후보로 지목한 니파바이러스를 1급 법정감염병으로 신규 지정하며, 한국의 방역체계에 비상이 걸렸다. 9월 8일 고시 개정을 통해 시행된 이번 조치는 2020년 감염병 예방 및 관리 법률 개편 이후 처음으로 1급 감염병을 신규 지정하는 사례로, 그 중대성을 보여준다.
니파바이러스는 치사율이 최대 90%에 달하는 극도로 위험한 바이러스로, 현재까지 백신이나 특효약이 존재하지 않는다. 1998년 말레이시아 니파 지역에서 처음 발견돼 100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 바이러스는, RNA 바이러스 특성상 변이가 잦고 인수공통 감염병이라는 점에서 코로나19와 유사한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국내 첫 1급 감염병 신규 지정, 즉시 신고·격리 체계 가동
1급 감염병은 치명률이 높거나 집단 발생 우려가 커서 발생 즉시 신고해야 하는 최고 수준의 감염병이다. 이번 니파바이러스감염증 지정으로 일선 의료기관은 의심환자 내원 시 관할 보건소 및 질병청으로 즉시 신고해야 하며, 필요한 경우 격리조치를 취해야 한다. 또한 감염자 발생 시 전국 단위의 방역 대응체계가 즉각 가동된다.
질병관리청은 이미 니파바이러스에 대한 실시간 유전자 증폭(RT-PCR) 기반 진단 기술을 확보했으며, 국내 도입 환자 발생을 가정한 시나리오 기반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최근 환자 발생이 지속되고 있는 인도와 방글라데시를 검역관리지역으로 지정해, 입국 시 발열이나 두통 등 증상이 있으면 Q-CODE 또는 건강상태질문서를 통해 검역관에게 신고하도록 하는 등 사전 준비를 완료했다.
평균 5-14일 잠복기, 48시간 내 혼수상태 위험
니파바이러스는 평균 5~14일의 잠복기를 거쳐 두통, 발열, 근육통, 구토 등의 초기 증상이 나타난다. 하지만 증상이 악화되면 뇌염으로 인해 발작이 일어나고, 48시간 내에 혼수상태에 이를 수 있는 극도로 위험한 질병이다. 치명률은 일반적으로 40~75%로 알려져 있지만,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서는 최대 90% 이상의 사망률을 보이기도 한다.
현재 니파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이나 특이적 치료제가 없어, 감염 시 대부분 해열제나 소염제 등의 대증치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는 니파바이러스가 차기 팬데믹 바이러스로 경고받는 주요 이유 중 하나다.
WHO는 지난해 6월 향후 국제 공중보건 위기상황(PHEIC)을 일으킬 수 있는 병원체 후보 중 하나로 니파바이러스를 선정했다. 기후변화와 생태계 파괴 등으로 해외 전염병의 국내 유입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조치는 코로나19 경험을 바탕으로 한 선제적 대응책으로 평가된다.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아직 니파바이러스 감염 사례가 없지만, 해외 유입 가능성에 대비해 방역체계를 사전에 구축했다”며 “1급 감염병 지정을 통해 신속한 대응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교훈을 살려 신종감염병에 대한 사전 대비책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전문가들은 니파바이러스의 1급 감염병 지정이 국민 건강 보호를 위한 필수적인 조치라고 평가하면서도, 과도한 공포보다는 정확한 정보에 기반한 예방수칙 준수가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인도나 방글라데시 등 발생 지역 여행 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며, 귀국 후 증상 발현 시 즉시 의료진에게 여행력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