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중국 공장 운영에 대한 규제를 대폭 강화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심각한 경영상 어려움에 직면했다. 미국 상무부 산업보안국(BIS)이 9월 2일 발표한 새로운 수출통제 조치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부여되었던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 지위가 12월 31일부로 완전 철회된다. 이는 한국 반도체 산업에 미·중 갈등의 직격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VEU 지위 철회의 파급효과
VEU 지위는 미국이 특정 외국 기업에 부여하는 특별한 자격으로, 이를 통해 미국산 반도체 장비나 기술을 중국으로 수출할 때마다 필요했던 건별 허가 절차를 생략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년 1월 1일부터는 모든 장비 수출에 대해 개별 허가를 받아야 하며, 특히 시설 확장이나 기술 업그레이드는 원천적으로 금지될 가능성이 높다.
BIS는 성명에서 “기존 VEU 참가 업체들이 중국 내 기존 공장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수출 허가 신청은 승인할 계획”이라면서도 “생산 능력 확장이나 기술 업그레이드에 대한 허가는 승인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명시했다. 이는 한국 기업들의 중국 내 사업 확장을 사실상 봉쇄하는 조치로 해석된다.
삼성전자 시안 공장은 회사의 유일한 낸드플래시 해외 거점으로, 삼성전자가 생산하는 전체 낸드 중 35~40%를 이곳에서 제조하고 있다. SK하이닉스 역시 우시 D램 공장에서 전체 D램 생산량의 40%를, 다롄 낸드공장에서도 최소 10%대 후반의 생산을 담당하고 있어 이번 조치의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희토류 협상 카드로 활용되는 반도체 규제
전문가들은 이번 VEU 철회가 단순한 반도체 수출통제 강화를 넘어, 희토류 협상에서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전략적 카드로 활용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디지타임스는 “분석가들이 이번 조치를 희토류를 중심으로 한 미·중 협상에서 미국이 협상력을 높이려는 의도로 해석한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 공급의 약 60%를 차지하고 있으며, 미국은 이 분야에서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반도체는 중국에게도 핵심 산업이기 때문에, 미국이 이를 지렛대로 활용해 희토류 분야에서 양보를 이끌어내려는 전략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한국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우리 기업들이 희생양이 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단순히 반도체 기술 유출 방지가 아니라 더 큰 지정학적 게임의 일부로 활용되고 있어 더욱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미·중 갈등이 더욱 심화되면서, 양국 사이에 끼인 한국 기업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미 국내 생산 확대를 통해 중국 사업 의존도를 줄이려는 노력을 시작했지만, 기존 투자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단기간 내 전환은 어려운 상황이다.
SK하이닉스는 성명을 통해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 모두와 긴밀한 소통을 유지하며 사업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대응 방안은 아직 불분명한 상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발표한 경제전망에서 2025년 한국 경제가 0.8%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는데, 이러한 대외 불확실성이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추가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우려된다.
업계에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외교적 노력과 함께, 기업들의 공급망 다변화 전략이 더욱 시급해졌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 산업이 한국 수출의 핵심 축인 만큼, 이번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국가 경제 전반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