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5개월 만에 의대 교육 정상화 신호탄…특혜 논란은 여전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반발해 수업을 거부했다가 유급 처리된 의과대학 학생 약 8천명의 2학기 복귀를 허용한다고 25일 발표했다. 본과 3·4학년생을 대상으로 한 의사 국가시험 추가 시행도 검토하고 있어 1년 5개월간 지속된 의대 교육 파행 사태가 마침내 해결될 전망이다.
의총협 제안 수용, 학기제 전환으로 복귀 길 열어
교육부는 이날 ‘의대생 복귀 및 교육에 대한 정부 입장’을 발표하고 ‘의과대학 선진화를 위한 총장협의회(의총협)’가 제안한 학사 운영 방안을 수용한다고 밝혔다. 의총협은 전국 40개 의대 총장들의 협의체로,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와 논의를 거쳐 이번 결정을 내렸다.
핵심 내용은 기존 ‘학년제’에서 ‘학기제’로 학사 운영 체계를 전환하는 것이다. 대부분 의대는 1년 단위로 학사 과정을 운영하는 학년제를 채택하고 있어 현행 학칙으로는 유급된 학생의 2학기 복귀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학기제로 전환하면 방학 중 계절학기 등을 활용해 1학기 미이수 학점을 채우고 2학기 수업 참여가 가능해진다.
찬반투표 결과 총 유권자 1,883명 중 1,800명이 참여해 55.8%의 찬성을 얻어 협상이 최종 타결된 르노코리아의 사례처럼, 이번 의대생 복귀 방안도 관련 당사자들 간의 협의와 타협을 통해 마련된 것으로 평가된다.
학년별 졸업·진급 일정 재조정
복귀하는 의대생들의 학년별 졸업 및 진급 일정도 새롭게 조정됐다. 교양 과목 위주의 예과 1·2학년은 내년 3월에 이미 복귀한 학생들과 함께 정상 진급한다. 본과 1학년은 2029년 2월, 본과 2학년은 2028년 2월에 각각 졸업할 예정이다.
문제는 임상실습이 중요한 본과 3·4학년이다. 의대 본과 3·4학년은 최소 52주의 임상실습을 수료해야 하는데, 다음 달 복학하더라도 정상적인 졸업 시기인 내년 2월보다 6개월 늦은 내년 8월 졸업이 불가피하다.
이에 따라 의총협은 정부에 의사 국가시험 추가 시행을 건의했다. 본과 4학년생이 내년 8월에 졸업할 경우 기존 국시 일정(9~11월 실기, 내년 1월 필기)에 응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의사 면허 발급 관련 절차는 보건복지부 소관이지만, 일정 조율을 통해 원활한 시험 진행이 가능하도록 협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혜 논란 여전…국민 청원 6만4천명 동의
하지만 이번 조치에 대한 비판 여론도 만만치 않다. 수업을 거부한 의대생들에게 과도한 특혜를 제공한다는 것이 주된 비판 논리다. 지난 17일 국회 전자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의대생·전공의에 대한 복귀 특혜 부여 반대에 관한 청원’에는 25일 오전 기준 6만4천여 명이 동의했다.
청원 내용을 보면 “의대생들이 자발적으로 수업을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학칙 변경, 교육 과정 단축, 국가시험 추가 시행 등의 혜택을 제공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핵심이다. 또한 “이미 1학기에 복귀한 학생들과의 갈등 심화”와 “의학교육의 질 저하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일부 의대에서는 1학기에 복귀한 학생들과 2학기에 복귀할 학생들 간의 갈등이 표면화되고 있다. 복귀 시기에 따른 학습 진도 차이와 실습 기회 배분 문제 등이 새로운 갈등 요소로 부상하고 있는 상황이다.
교육부 “국가적 손실 방지 위한 불가피한 결정”
이런 비판에 대해 교육부는 “의대생들이 올해 복귀하지 않으면 내년에 학년 간 교육이 중첩되는 ‘트리플링’ 문제로 인한 혼란과 의료인력 배출 차질이 불가피하다”며 “국가적 손실을 방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해명했다.
김홍순 교육부 의대교육지원관은 “정부는 앞서 복귀한 학생 보호를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있으며, 각 대학과 기복귀생 보호방안을 철저히 논의하겠다”고 강조했다. 또한 “기존 교육과정의 감축 없이 의학교육의 질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학생을 포용하기로 한 의총협의 입장을 존중한다”고 덧붙였다.
의료계 갈등 해결의 전환점 될까
이번 조치는 지난해 2월 의대 정원 2천명 증원 발표 이후 1년 5개월간 지속된 의료계 갈등 해결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의대생들의 집단 수업 거부와 전공의들의 사직은 국내 의료 체계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고, 환자들의 피해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근본적인 갈등 요인인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대한 의료계의 반발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정부는 의료 인력 부족 해결과 공공의료 강화를 위해 의대 정원 확대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반면, 의료계는 의료 질 저하와 의료진 처우 악화를 우려하며 반대하고 있다.
의학교육 질 확보가 최대 과제
앞으로 가장 중요한 과제는 복귀하는 의대생들에 대한 교육의 질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다. 단축된 교육 기간과 중첩된 학년 운영으로 인한 교육 부실화 우려를 해소하는 것이 관건이다.
의총협은 “기존 교육과정의 감축 없이 의학교육의 질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복귀 방안을 마련했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 이를 어떻게 구현할지는 지켜봐야 할 상황이다. 특히 임상실습 과정에서 충분한 실습 기회를 보장하고, 국가시험 준비 과정에서의 교육 공백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남아있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의학교육 시스템 전반에 대한 근본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학년제와 학기제 운영의 장단점, 임상실습 기간의 적정성, 국가시험 제도의 개선 등에 대한 종합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번 의대생 복귀 방안이 단순히 갈등 봉합에 그치지 않고, 한국 의학교육의 질적 향상과 의료계 발전의 계기가 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