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구축에 잇따라 뛰어들면서 민간 주도의 AI 인프라 확충이 가속화되고 있다. 정부의 AI 인프라 정책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민간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투자에 나서고 있어 주목된다.
**네이버·카카오·NHN 등 대규모 투자 나서**
17일 IT업계에 따르면 네이버는 춘천 데이터센터에 엔비디아의 최신 블랙웰(GB200) GPU가 탑재된 40MW(메가와트)급 AI 슈퍼컴퓨팅 센터 구축을 추진 중이다. 총 투자 규모는 1조 5천억원에 달한다.
카카오도 김천과 안산에 각각 20MW급 AI 데이터센터 건설을 계획하고 있으며, NHN은 목포와 세종에 AI 특화 데이터센터를 구축 중이다. 이들 기업의 총 투자 규모는 3조원을 넘어선다.
업계 관계자는 “ChatGPT, Claude 등 생성형 AI 서비스 급증으로 컴퓨팅 파워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고 있어 데이터센터 확충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정책과 민간 투자 속도 차이 벌어져**
정부가 발표한 ‘K-클라우드 벨트’ 구축 계획은 여전히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나오지 않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해 발표한 ‘AI 반도체 K-벨트’ 계획도 예산 확보와 부지 선정 등에서 난항을 겪고 있다.
반면 민간 기업들은 자체 자금으로 AI 인프라 구축에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글로벌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선제적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김영훈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 회장은 “정부의 정책 수립과 실행 속도가 민간의 투자 의욕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규제 완화와 지원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기업들의 국내 진출도 활발**
마이크로소프트는 서울과 부산에 Azure 데이터센터 확장을 추진하고 있으며, 아마존웹서비스(AWS)도 국내 데이터센터 증설을 검토 중이다. 구글도 경기도 평택에 추가 데이터센터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특히 오픈AI의 서울 아시아 거점 설립과 맞물려 글로벌 AI 기업들의 국내 인프라 투자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국내 데이터센터 시장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전력 공급과 환경 문제 대두**
AI 데이터센터 급증으로 전력 공급 문제가 새로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AI 서버는 기존 서버 대비 3-5배 많은 전력을 소모하며, 냉각 시설 운영에도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한국전력은 “대용량 전력을 사용하는 AI 데이터센터 증가로 전력 수급 계획을 재검토하고 있다”며 “신재생에너지 활용 방안도 함께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환경부도 데이터센터의 탄소 배출량 증가를 우려하며 친환경 데이터센터 구축 가이드라인 마련에 나섰다.
**델 테크놀로지스, 데이터센터 최적화 솔루션 공개**
이런 가운데 델 테크놀로지스가 AI 모델의 전력 소비를 줄이고 데이터센터 운영을 최적화할 수 있는 ‘컨셉 아스트로(Concept Astro)’ 솔루션을 공개했다고 16일 발표했다.
이 솔루션은 에이전틱 AI, 디지털 트윈, 운영 자동화 기술을 결합한 IT 인프라 최적화 기술로, 데이터센터 운영 비용을 최대 20% 절감할 수 있다고 업체 측은 설명했다.
델코리아 관계자는 “AI 워크로드 증가로 데이터센터 운영 복잡도가 급격히 높아지고 있어 자동화된 최적화 솔루션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IT 서비스 업계 수혜 기대**
대규모 AI 인프라 구축으로 국내 IT 서비스 업계도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SDS, LG CNS, SK C&C 등 대형 SI 업체들이 데이터센터 구축과 운영 서비스 수주에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AI 특화 데이터센터는 기존 데이터센터와 달리 특수한 설계와 운영 노하우가 필요해 관련 기술력을 보유한 업체들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이상훈 삼성SDS 클라우드사업부장은 “AI 데이터센터는 일반 데이터센터와 완전히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며 “우리의 AI 플랫폼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시장을 선도하겠다”고 밝혔다.
**반도체 업계에도 긍정적 영향**
AI 데이터센터 확산은 국내 반도체 업계에도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HBM(고대역폭메모리) 수요가 급증하고 있으며, AI 반도체 관련 부품 업체들도 수혜를 입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는 자체 AI 반도체인 ‘가우스’ 시리즈 개발을 가속화하고 있으며, SK하이닉스는 HBM4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AI 인프라 투자 급증으로 메모리와 AI 반도체 시장이 예상보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 “민관 협력 체계 구축 필요” 지적**
전문가들은 민간의 적극적인 투자에 비해 정부의 정책 지원이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규제 완화와 세제 혜택, 전력 공급 계획 등에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기용 KAIST 전산학부 교수는 “AI 인프라는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만큼 민간의 투자 의욕을 정부가 적극 뒷받침해야 한다”며 “규제 혁신과 함께 장기적인 마스터플랜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한편 업계에서는 AI 인재 부족도 인프라 구축의 걸림돌로 지적되고 있어, 인재 양성과 인프라 구축이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