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학기부터 전국 교실에 AI 디지털교과서가 본격 도입되면서 교육계에 전례 없는 갈등이 확산되고 있다. 정부가 ‘맞춤형 교육 혁신’이라는 명분으로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AI 디지털교과서에 대해 교사 73%, 학부모 31%가 반대 의사를 밝히면서 교육 현장의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 2024년 검정심사를 통과한 12개 출원사의 총 76종 AI 디지털교과서를 2025년 1학기부터 초등학교 3·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공통교과의 영어, 수학, 정보 교과에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당초 계획했던 국어와 기술·가정(실과) 교과는 현장의 반발로 제외되었으며, 사회·과학 교과는 2027년으로 연기되었다.
교사들의 강력한 반발, “기술적 부담과 효과 의문”
민주당 고민정 의원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교사들의 73%가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한 교사는 “교사들이 기술적인 부분을 얼마나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되고, 프로그램이 얼마나 잘 개발될지도 의문”이라며 현장의 우려를 대변했다.
교사들의 가장 큰 우려는 급작스러운 디지털 전환에 따른 기술적 부담과 교육 효과에 대한 불확실성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충분한 준비 없이 성급하게 도입하려는 정부 정책이 교육 현장에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중장년 교사들의 경우 새로운 시스템 적응에 상당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학부모들의 분열된 시각, 디지털 의존성 우려 팽배
전국 초·중·고 자녀를 둔 학부모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찬성 30.7%, 반대 31.1%, 중립 38.2%로 의견이 팽팽히 갈렸다. 반대 이유로는 ‘디지털 기기 과의존'(39.2%)이 가장 높았으며, ‘학생 문해력 저하'(35.7%), ‘수업 질 저하'(10%), ‘교육 격차'(8.7%) 순으로 나타났다.
한 학부모는 “아이들이 이미 스마트폰과 태블릿에 너무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교과서마저 디지털화하면 종이책 읽기 능력이나 집중력이 더욱 떨어질 것 같다”며 걱정을 표했다. 반면 일부 학부모들은 “개별 맞춤형 학습이 가능하다면 학습 부진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긍정적 기대를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을 기정사실화하며 추진하고 있다. 교육부는 “학생들이 AI 디지털교과서를 통해 개념을 더 쉽게 이해하고, 자신의 수준에 맞는 다양한 학습 콘텐츠를 통해 학습에 대한 흥미를 기를 수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올해 상반기에 약 1만 명의 교실혁명 선도교사를 양성했으며, 시·도교육청과 협력하여 하반기에 15만 교사 대상 연수를 추진하고 있다. 또한 2025년에는 디지털 튜터 1,200명을 학교에 배치하고, 교육(지원)청별 테크센터를 운영하여 학교의 AI 디지털교과서 활용을 지원할 예정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많은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전국 학교의 디바이스와 네트워크 점검 및 개선 작업이 2024년 7월부터 2025년 2월까지 진행되고 있지만, 일부 지역의 인프라 부족과 예산 제약으로 차질을 빚고 있다. 특히 농어촌 지역 학교들의 경우 네트워크 환경이 열악해 원활한 디지털 수업 진행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의 핵심 목적을 교육 격차 해소로 제시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기초학력 부족으로 학습에 흥미를 잃거나 포기하는 학생들이 생기지 않도록 지역이나 소득 조건에 관계없이 모든 학생이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교육 전문가들은 오히려 새로운 디지털 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서울대 교육학과 이혜정 교수는 “디지털 기기 활용 능력이 뛰어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 간의 격차가 더욱 벌어질 수 있으며, 가정의 경제적 여건에 따른 교육 격차도 심화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국회 교육위원회를 통과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최종 승인될 경우, AI 디지털교과서가 교과서 지위를 잃게 되어 학생들의 평등한 교육 기회 박탈과 교실혁명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2025년 1학기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을 불과 몇 개월 앞둔 지금, 교육부는 현장의 우려를 충분히 수렴하고 단계적 도입 방안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교육 혁신이라는 명분 하에 성급하게 추진되는 정책이 오히려 교육 현장에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되지 않도록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