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다세대주택 시장 양극화 심화, 전세 신뢰 회복이 관건
2025년 9월 현재 한국 부동산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이슈 중 하나는 빌라 및 다세대주택 시장의 극심한 침체와 아파트 시장과의 양극화 현상이다. 전세사기 여파로 무너진 전세 신뢰가 서민 주거의 핵심인 비아파트 시장 회복을 가로막고 있어, 정부의 9·7 부동산 대책에서도 이 문제가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한국부동산원과 KB국민은행 부동산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서울 지역 빌라 매매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5.2% 하락한 반면, 같은 기간 아파트 가격은 2.8% 상승하며 뚜렷한 대조를 보였다. 특히 전세 시장에서는 빌라의 전세가격이 8.7% 급락하며 임대차 시장의 구조적 불안을 드러냈다.
전세사기 여파로 무너진 시장 신뢰
빌라 및 다세대주택 시장 침체의 핵심 원인은 2022년부터 본격화된 전세사기 사건들이다. 전국적으로 2만여 건의 전세사기 피해 신고가 접수되면서, 특히 빌라와 다세대주택에 대한 전세 수요가 급감했다. 이는 서민들의 주된 주거 수단인 비아파트 시장에 직격탄이 됐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빌라 전세를 찾는 수요자가 절반 이상 줄어들면서, 임대인들도 월세로 전환하거나 아예 매물을 내놓지 않고 있다”며 “이는 서민 주거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서울 은평구와 노원구, 도봉구 등 빌라 밀집 지역에서는 전세 매물 자체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전세보증보험 가입 조건도 까다로워져, 빌라 소유주들이 전세보다는 월세를 선호하는 추세가 뚜렸해지고 있다.
정부 대책과 시장 반응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9월 7일 발표한 부동산 대책은 빌라 시장 정상화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들을 포함했다. ‘전세사기 특별법’ 통과와 함께 전세보증보험 확대, 빌라 건축 규제 완화, 소규모 정비사업 활성화 등이 핵심 내용이다.
특히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한국주택금융공사(HF) 등 보증기관의 역할을 강화해, 임대사업자가 사기를 쳐도 선량한 임차인에게는 보증기관이 대신 보증금을 돌려주도록 하는 제도적 안전망을 구축했다.
또한 빌라 리모델링과 소규모 재건축 사업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용적률 인센티브를 제공해 빌라 시장의 활력을 되찾겠다는 계획이다. 국토교통부는 “비아파트 시장 정상화가 전체 부동산 시장 안정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지역별 격차와 투자심리 위축
빌라 시장의 어려움은 지역별로도 다른 양상을 보인다. 서울 강남권과 여의도, 용산 등 일부 프리미엄 빌라는 여전히 거래가 활발하지만, 외곽 지역과 수도권 신도시의 빌라들은 거래 자체가 실종된 상태다.
경기 고양시의 한 공인중개사는 “작년까지만 해도 빌라 문의가 꽤 있었는데, 올해는 월세조차 문의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며 “전세사기 뉴스가 나올 때마다 고객들이 더욱 움츠러든다”고 토로했다.
투자자들도 빌라 시장을 외면하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2025년 8월 빌라·다세대주택 거래량은 전년 동월 대비 42% 급감했으며, 이는 2020년 코로나19 초기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시장 전문가들의 전망
부동산 전문가들은 빌라 시장 회복이 전체 부동산 시장 정상화의 열쇠라고 입을 모은다. KB부동산 리브온의 이성원 수석연구원은 “아파트 중심의 상승장은 서민들의 내 집 마련 기회를 더욱 축소시킨다”며 “빌라 시장이 안정되어야 주거 사다리가 정상화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회복 시점에 대해서는 신중한 전망을 내놓았다. 한국부동산연구원의 김진유 선임연구위원은 “전세 신뢰 회복에는 최소 2-3년이 걸릴 것”이라며 “제도적 안전장치가 실제로 작동하는 모습을 시장이 확인해야 수요가 돌아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결국 빌라 및 다세대주택 시장의 정상화는 전세 제도에 대한 신뢰 회복과 직결되어 있으며, 이는 정부 정책의 실효성과 시장의 인내심이 만나는 지점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서민 주거 안정이라는 사회적 과제와 부동산 시장 정상화라는 경제적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정교한 정책 설계와 지속적인 시장 모니터링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