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조지아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대규模 한국인 구금 사태가 외교적 해결국면에 접어들었다. 정부는 9일 구금된 한국인 300여명 전원을 자진출국 형태로 송환하기로 미국 측과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구금된 우리 국민들을 추방이 아닌 자진출국을 통해 한 명도 남김없이 전세기로 모셔올 것이라고 밝혔다. 자진출국과 추방의 차이는 향후 미국 재입국에 있어 결정적이다. 추방의 경우 최소 5년간 미국 입국이 금지되지만, 자진출국은 향후 입국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외교부 긴급 대응과 협상 과정
조현 외교부 장관은 8일(현지시간) 워싱턴DC로 긴급 출국해 미국 측과 직접 협상에 나섰다. 외교부는 이번 사건이 발생한 4일 즉시 현장 대응팀을 구성하고, 애틀랜타 총영사관 직원들을 현지에 파견했다. 5-6일 양일간 구금된 한국인 중 면담을 요청한 250여명과 영사 면담을 실시한 결과, 특별한 건강 이상이나 인권 침해 사례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외교부 관계자는 미국의 법 집행 과정에서 우리 투자기업의 경제활동과 우리 국민의 권익이 부당하게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며 미국 측에 유감을 표명했다고 밝혔다. 이는 한미 양국의 경제협력 관계를 고려한 신중한 외교적 메시지로 해석된다.
사건 발생 경위와 배경
이번 사건은 9월 4일(현지시간) 미국 국토안보수사청(HSI)이 조지아주 현대차-LG 배터리 합작법인(HL-GA) 건설 현장을 급습하면서 시작됐다. 총 475명이 체포됐으며, 이 중 332명이 한국인이었다. HSI 관계자는 이들이 불법 체류이거나 체류 자격에 위배되는 불법 취업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비자 발급 과정의 복잡성에 있었다. 미국의 H-1B 비자는 연간 8만5천명만 발급하는 추첨제로 운영되는데, 지난해 78만명이 신청해 경쟁이 치열했다. 이에 따라 한국 기업들은 공장 건설을 신속히 진행하기 위해 단기간에 발급 가능한 관광사업 비자로 근로자들을 파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러한 비자로는 취업이 금지돼 있어 법적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특히 일부 근로자들은 비자 기간을 초과해 체류한 상태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이민법 위반은 연방범죄에 해당하므로, 이번 대규모 단속은 미국 당국의 강력한 법 집행 의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이민법 위반을 넘어 한미 경제협력의 근본적 문제를 드러냈다. 현대차 조지아 공장은 55억 달러(약 7조원)를 투자하는 대형 프로젝트로, 조지아주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사업이다. 또한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공장도 26억 달러 규模의 투자가 이뤄지고 있어, 공사 지연 시 조지아주 경제에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번 사건 이후 현대자동차그룹, LG에너지솔루션 등 미국 투자기업들과 긴급 간담회를 개최해 비자 제도를 점검했다.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실장은 우리 기업과 국민이 정당한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받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일부 기업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미국 투자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어, 이번 사건이 향후 한국 기업들의 미국 투자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하는 미국 제조업 부흥 정책에도 역풍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해외 투자 진출 시 비자 및 체류 자격 관리를 더욱 철저히 하겠다는 방침이다. 또한 미국 측과의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유사한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개선방안도 논의할 예정이다.
구금된 한국인들은 이르면 10일 전세기편으로 귀국할 예정이며, 전세기 비용은 관련 기업들이 부담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은 글로벌 경제시대에 기업의 해외 진출과 관련한 법적 컴플라이언스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부각시킨 사례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