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조지아주에 위치한 현대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한국인 300여 명을 포함해 총 475명이 불법 체류 혐의로 체포되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이번 사건은 미국 내 한국인에 대한 단일 최대 규모의 이민 단속으로 기록되며, 양국 외교관계에 새로운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 국토안보수사청(HSI)은 현지시간 9월 4일 조지아주 엘라벨에 위치한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법인 ‘HL-GA 배터리 회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대규모 이민 단속을 실시했다고 5일 공식 발표했다. 이번 작전에는 이민세관단속청(ICE), HSI뿐만 아니라 연방수사국(FBI), 마약단속청(DEA), 주류담배화기폭발물단속청(ATF), 세관국경보호청(CBP) 등 다수의 연방기관이 동원됐다.
트럼프 행정부 대규모 추방 정책의 일환
이번 단속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대규모 불법이민자 추방 정책의 일환으로 분석된다. ICE는 이번 작전을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불법 고용과 연방 범죄를 겨냥한 다기관 합동 작전”이라고 설명했다. 단속 당국은 공장 작업자들을 시민권 확인이 완료될 때까지 억류했으며, 신원 확인이 되지 않은 인원들은 손목을 케이블 타이로 결박한 채 조지아주 폴크스턴의 ICE 구치시설로 이송됐다.
HSI는 “작전 중 체포된 사람들은 비자나 체류 자격 조건을 위반하여 불법적으로 일하고 있었다”며 “단기 비자나 관광 비자를 받은 사람들이 현장에서 일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는 합법적 입국 후 체류 자격을 위반한 오버스테이(overstay) 사례들이 대부분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의 우려와 대응
이번 사건에 대해 한국 외교부는 즉각 대응에 나섰다. 외교부는 주미대사관 총영사 등 관계자들을 현장에 파견해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재웅 외교부 대변인은 5일 정례브리핑에서 “미국의 법집행 과정에서 우리 투자기업들의 경제활동과 우리 국민들의 권익이 부당하게 침해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특히 이번 사건이 한미 양국 간 경제협력과 외교관계에 미칠 파급효과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대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의 조지아 배터리 공장은 총 51억 달러(약 6조 8000억 원) 규모의 대형 투자사업으로, 미국 내 전기차 공급망 구축의 핵심 프로젝트 중 하나다. 공장은 10월 준공을 앞두고 장비 설치 등 막바지 작업이 진행 중이었던 상황에서 이번 사건이 발생했다.
건설업계와 글로벌 공급망에 미칠 영향
업계에서는 이번 사건이 미국 내 한국 기업들의 건설 프로젝트와 인력 운용에 상당한 차질을 빚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전기차 배터리 보조금 혜택을 받기 위해 현지 생산기지 구축을 서둘러왔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인해 생산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단순한 이민법 위반을 넘어 한미 경제협력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지적한다. 한국 기업들의 대미 투자에 대한 신뢰도 하락과 함께, 향후 유사한 단속이 확산될 경우 한국 기업들의 미국 진출 전략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편, 체포된 한국인들의 신속한 석방과 공정한 법적 절차 보장을 위한 외교적 노력이 계속되고 있으며, 양국 정부 간 긴밀한 협의를 통해 사건의 조속한 해결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사건은 글로벌 공급망 시대에 인력 이동과 고용 관행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