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가전·IT 박람회인 CES 2025에서 한국의 AI 기술이 글로벌 무대의 중심에 섰다. 8월 12일 개막한 CES 2025에서 한국 정부는 ‘AI 국가대표’ 선발을 공식 발표하며 인공지능 분야 글로벌 경쟁에서 한국의 위상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각각 차세대 AI 칩셋과 생성형 AI 가전을 선보이며 미국, 중국과 함께 기술 패권 경쟁의 3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SK하이닉스 HBM 독주, 삼성 추격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는 SK하이닉스가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HBM4 기술 개발에서 앞서나가며 엔비디아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AI 서버용 메모리 시장 점유율 80% 이상을 확보했다. 이는 글로벌 AI 붐에 따른 직접적 수혜로, 한국이 AI 인프라의 핵심 부품 공급국으로 자리매김했음을 보여준다.
반면 삼성전자는 HBM 시장에서 후발주자 위치에 있지만, 파운드리와 메모리를 아우르는 종합 반도체 기업으로서의 강점을 살려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차세대 3나노 공정을 활용한 AI 전용 칩 개발에 집중하며 TSMC와의 격차를 좁혀나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이 갤럭시 S25에 자체 개발 AI 칩을 탑재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생성형 AI와 가전의 만남
LG전자는 CES 2025에서 ThinQ AI 3.0 플랫폼을 발표하며 가전제품의 AI화를 선도하고 있다.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 모든 가전제품이 대화형 AI와 연결되어 사용자의 생활 패턴을 학습하고 최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마트 홈 생태계’를 구축했다. 특히 한국어 자연어 처리 기술의 정교함이 글로벌 관람객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삼성전자 역시 갤럭시 AI의 성공에 힘입어 모바일에서 시작된 AI 기술을 TV, 냉장고 등 전 가전 라인업으로 확장하고 있다. 특히 개인화된 콘텐츠 추천과 에너지 효율 최적화 기능이 유럽과 미국 소비자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양사의 경쟁은 단순한 기술 대결을 넘어 미래 스마트 홈 표준을 선점하려는 플랫폼 경쟁으로 발전하고 있다.
정부 주도 ‘AI 국가대표’ 프로젝트
한국 정부는 CES 2025를 통해 ‘AI 국가대표’ 선발 프로젝트를 공식 출범시켰다. 이는 네이버, 카카오, NCSOFT 등 국내 AI 기업들 중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을 선별해 집중 지원하는 국가 차원의 전략이다. 특히 한국어 특화 대화형 AI인 HyperCLOVA X와 게임 AI 분야에서 독보적 기술을 보유한 NCSOFT의 VARCO LLM이 주목받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AI 반도체, 소프트웨어, 플랫폼 전 영역에서 한국이 글로벌 톱3 안에 진입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5년간 10조원 규모의 ‘K-AI 벨트’ 구축 계획을 발표하며, 판교와 대덕연구개발특구를 중심으로 한 AI 생태계 조성에 나선다고 했다.
글로벌 빅테크와의 경쟁 심화
하지만 한국 기업들의 앞길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등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AI 분야에서 쌓아온 기술적 우위와 데이터 규모는 여전히 압도적이다. 특히 영어권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ChatGPT, Gemini 등의 글로벌 확산력은 한국 기업들에게 큰 도전 과제다.
중국 역시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등을 앞세워 AI 굴기를 추진하며 한국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중국은 14억 인구라는 거대한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AI 모델 훈련 데이터와 사용자 피드백을 축적하는 데 유리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
한국형 AI의 차별화 전략
이런 상황에서 한국 AI 기업들은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특화된 AI’라는 차별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네이버의 HyperCLOVA X는 한국어 이해력에서 GPT-4를 능가하는 성능을 보여주며, 한국 기업과 정부의 업무 효율화에 활용되고 있다. 또한 K-POP, K-드라마 등 한류 콘텐츠와 AI를 결합한 새로운 서비스도 주목받고 있다.
NCSOFT는 게임 개발 과정에서 축적된 AI 기술을 바탕으로 창작 지원 AI ‘VARCO’를 개발했다. 소설 창작부터 웹툰 제작까지 다양한 콘텐츠 생성을 지원하며, 한국의 창작 산업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CES 2025에서 보여준 한국의 AI 기술력은 단순히 해외 기술을 모방하는 수준을 넘어 독자적인 혁신을 창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반도체와 가전 분야에서의 전통적 강점을 AI와 결합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앞으로 한국이 AI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을지는 기술 개발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에 달려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