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스테이블코인 시대 개막”… 민병덕 의원, 디지털자산기본법 발의로 K-금융 혁신 신호탄
자본금 5억원 이상 법인이면 발행 가능… “통화 주권 지키는 전략적 자산”
한국이 글로벌 디지털 금융 경쟁에서 주도권 확보를 위한 본격적인 행보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민병덕 의원이 6월 10일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하고 대통령 직속 디지털자산위원회 설치를 골자로 한 ‘디지털자산기본법’을 대표 발의했다고 발표했다.
3,300조원 규모 시장,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제도화
민 의원에 따르면 한국의 디지털자산 시장 규모는 2025년 6월 기준 약 2조 5,000억 달러(약 3,300조원)에 이르러, 2020년 말 약 7,500억 달러 대비 3배가량 급성장했다. 이는 국내 GDP의 약 1.5배에 달하는 규모로, 더 이상 금융 변방이 아닌 핵심 경제 동력으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준다.
민 의원은 국회 기자회견에서 “디지털자산은 더 이상 변방의 실험적 수단이 아니라 주요국이 제도화를 선도하고 있는 새로운 경제 동력”이라며 “우리나라는 여전히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법제 정비가 미비한 상황”이라고 시급한 입법 필요성을 강조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통화 주권 수호의 핵심 전략
이번 법안의 가장 주목받는 부분은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 허용이다. 현행법상 민간의 원화 기반 디지털 자산 발행은 법적 공백에 놓여 있었지만, 이 법안이 통과되면 자기자본 5억원 이상을 보유한 국내 법인은 금융위원회의 사전 인가를 받아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게 된다.
당초 업계에서 거론되던 50억원에서 5억원으로 대폭 하향 조정된 자본금 요건은 핀테크 스타트업까지 포괄하는 개방형 구조로 설계되어, 원화 기반 디지털 결제·송금 시장의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에서는 이를 통해 ‘한국판 서클(Circle)’의 등장을 기대하고 있다.
글로벌 디지털 통화 패권 경쟁의 새로운 국면
현재 전 세계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테더(USDT), USD 코인(USDC) 등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다. 전체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 약 2,430억 달러 중 90% 이상이 달러 기반이며, 이는 미국 M2 통화 공급의 1.1%를 넘는 규모다.
민 의원은 “현재 오프라인 달러 패권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온라인 결제 시장의 패권을 누가 쥘 거냐의 싸움이므로 방향이 아닌 속도가 중요하다”며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전략적 의미를 부각했다. 특히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한국의 통화 주권을 지키는 전략적 자산으로 기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 직속 디지털자산위원회로 국가 차원 육성
법안은 대통령 직속 ‘디지털자산위원회’ 신설을 통해 국가 차원의 전략적 육성과 정책 조율을 담당하도록 했다. 위원회는 전체 위원의 3분의 2 이상을 민간이 맡도록 하여 민간 주도성을 강조했으며, 디지털자산업의 육성과 진흥을 위한 기본계획 수립 등을 담당한다.
디지털자산은 △가상자산형 △권리형 △자산연동형(스테이블코인) △기타형으로 구분되며, 관련 업종은 수탁·거래·발행·서비스 제공업 등으로 정의했다. 게임 아이템과 선불지급수단 등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어 규율의 명확성을 확보했다.
한국은행 vs 민간 발행, 통화정책 논란 점화
한편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허용 방침에 대해 한국은행이 강한 우려를 표명하며 정책 갈등이 표면화되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최근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화폐의 대체재가 될 수 있다”며, 비은행권 발행이 허용될 경우 통화정책이 무력화될 수 있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지적했다.
이런 기조 속에 한은은 오는 7월 개최 예정이던 관련 컨퍼런스를 전격 연기하며 대응 전략을 재정비하는 모습이다. 이는 “화폐는 누구의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제기하며, 디지털 시대 통화 주권을 둘러싼 새로운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투자자 보호와 시장 투명성 강화 방안
법안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인에게 엄격한 안전장치를 요구한다. △준비금 적립 △도산 절연 구조 마련 △환불 보장 △전산 안정성 확보 등을 통해 이용자 보호를 강화했다. 특히 발행인 파산 시에도 환불이 가능하도록 도산절연을 통한 보호 체계를 구축했다.
또한 디지털자산 산업의 자율규제 체계 구축을 위해 ‘한국디지털자산업협회’를 법정 단체로 설립하도록 규정했다. 협회는 거래지원 적격성 평가위원회와 시장감시위원회를 설치하여 코인의 상장·상폐 심사와 불공정거래 감시 업무를 담당한다.
글로벌 규제 트렌드와 한국의 대응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따라 스테이블코인 법안(GENIUS Act)의 입법 절차를 진행 중이며, 5월 19일 상원에서 66대 32의 압도적 표차로 절차적 표결을 통과시켰다. 일본은 2022년 PSA(Payment Services Act) 개정을 통해 스테이블코인 규제 체계를 마련했으며, 유럽연합(EU)도 MiCA 규제를 통해 스테이블코인 제도화를 완료했다.
싱가포르는 결제서비스법에 자국 통화 및 G10 통화 연동 스테이블코인 규제를 포함하는 법 개정을 진행 중이며, 홍콩은 HKMA가 지정한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대한 엄격한 사전 통제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대기업·핀테크 동반 진입 기대
자본금 요건이 5억원으로 설정됨에 따라 삼성전자, 카카오페이 등 대기업은 물론 토스, 페이코 등 핀테크 기업들의 적극적인 시장 참여가 예상된다. 특히 기존 금융 인프라와 연계된 종합적인 디지털 금융 서비스 제공이 가능해져, 국내 핀테크 생태계의 경쟁력 강화에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이 거래소 중심의 사후 규제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기본법은 발행부터 상장, 유통, 감독에 이르는 전체 구조를 포괄한다”며 “디지털자산을 하나의 독립 산업으로 인정한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이재명 정부 공약 현실화… 연내 처리 가능성
이번 법안은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했던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으로, 새 정부의 디지털 경제 정책 기조를 구현하는 핵심 입법으로 평가된다. 민주당이 국회 과반을 확보한 상황에서 연내 처리 가능성이 높아, 2025년 하반기부터 원화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본격 형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민 의원은 “디지털자산기본법은 규제를 넘어, 우리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금융 주권을 지키기 위한 기반”이라며 “특히 원화 기반의 디지털 자산 생태계를 조성하고 디지털 금융기술과 민간 혁신 역량을 연결함으로써 대한민국이 디지털 글로벌 G2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마무리: 디지털 금융 패러다임의 전환점
한국의 디지털자산기본법 발의는 단순한 법률 제정을 넘어 ‘한국형 디지털 금융 패러다임’의 설계도라 할 수 있다. 특히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통한 통화 주권 확보와 민간 혁신 생태계 육성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점에서, 글로벌 디지털 경제 질서 재편에 적극 대응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앞으로 한국은행과의 정책 조율, 투자자 보호 체계의 실효성 확보, 글로벌 규제 기준과의 조화 등이 성공적인 제도 정착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무엇보다 “방향보다 속도가 중요한 마지막 골든타임”이라는 민 의원의 표현처럼, 글로벌 디지털 통화 패권 경쟁에서 한국이 어떤 위치를 확보할지 귀추가 주목된다.